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높아만 가는 「마음의 장벽」(통독3년… 명과 암:중)
알림

높아만 가는 「마음의 장벽」(통독3년… 명과 암:중)

입력
1993.10.03 00:00
0 0

◎동독인 “서독인은 이기주의자”/상대적 박탈감,깊은 질시의골 지난달25일 브란덴부르크문앞 파리광장에서는 「전쟁을 끝내라」(STOP THE WAR)라는 제목으로 노상연극판이 벌어지고있었다. 독일내 극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이 연극은 통일의 감동을 되짚기위해 광장을 찾은 외국관광객들에게는 난감한 역설로 다가왔다. 환희와 기대로 충만했던 통일이 3주년을 맞는 시점에 끝나지않은 전쟁이야기. 독일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내보이는 통일의 현주소였다.

 동독출신의 단원 리나츠(44)는 『통독과 함께 콘크리트장벽은 무너졌지만 마음의 장벽,경제적인 장벽은 더욱 두터워지고있다』면서 서로 벽에 갇힌 채 벌이는 새로운 전쟁의 실상을 털어놓는다. 호네커같은 큰 범죄자들은 모두 빠져나간대신 체제의 희생자였던 동독시민들이 과거청산의 뒷감당에 부대끼고있으며 질시의 골은 깊어만 가고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장벽이 없어졌지만 브란덴부르크문을 사이에 둔 동서베를린은 여전히 시각적으로 양분되어있다. 반세기 분단의 흔적을 제거하기에는 3년은 너무 짧은 것이다. 동독안에 베를린이 고립돼있는동안 서방의 당당한 전시장이었던 쿠담거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국식도시를 지향하는 서베를린이 통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다면 마르크스엥겔스광장과 알렉산더광장사이의 전시용 고층빌딩을 끼고 적요한 동베를린은 남겨진 통일의 과제를 일깨운다.

 중심가뒤편의 골목들은 여전히 악전고투하고있는 동독인들의 현실과 절망을 보다 구체화시켜준다. 대형크레인들이 동원된 건물보수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헬무트 콜총리를 비롯한 지도층을 비난하는 낙서들이 즐비하고 실업자들이 선술집인 크나이페에 모여앉아 신세한탄을 하고있다.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서자  이방인의 틈입을 달가워하지않는 경계의 시선이 느껴진다. 악착같이 돈벌고 밀수등 범죄를 일삼는 베트남인으로 오해했다는 마이어라는 교수출신의 실업자는 베시(서독인)들은 나누어줄줄 모르는 욕심쟁이이며 공동체정신을 결여한 이기주의자라고 눌러온 불만을 터뜨린다. 오시(동독인)의 가장 큰 불만은 당연히 생계가 걸린 일자리문제이다.  당연히 베시들도 할말은 있다. 콜정부가 올3월 마련한 사회연대협정에 의해 향후10년간 해마다 1천 1백억 마르크의 세금을 부담해야한다. 지난해도 EC에서 제공한 50억마르크를 포함, 1천6백억마르크를 동독의 공공분야투자에 밀어넣었던 베시들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두손 든 상태인것이다. 기대했던 통일특수는 무산되고 정부재정적자는 2조마르크에 달해 실업수당과 보조금삭감등 내핍을 강요당하는 현실이 순전히 오시때문이라는 심리이다.

 오시들의 걱정은 여기에 머무르지않는다. 경제문제에서 비롯된 갈등이 극우주의의 준동과 범죄의 양산으로 탈출구를 찾으면서 동독지역을 위기상태로 몰아넣는다는 심상치않는 사실이다. 스스로 2등시민으로 비하하는 젊은이들의 좌절은 구세대의 의구심리와 맞닿으면서 외국인들에대한 테러로 표출되고있고 베를린은 90년이후 범죄가 급격히 증가해 독일내 범죄발생률 3위로 올라섰다.

 헤겔의 후예답게 이들은 우울한 논쟁끝에 현명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독일의 통일은 어렵고 때로는 해결이 불가능해보이는 문제점들을 가져왔지만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면서 종종 간과되는 중요한 사실은 이 문제점들이 통일의 결과라기보다 고통스럽고 무의미했던 분단의 산물이라는 깨달음이다.【베를린=한기봉특파원(연착)】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