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올림픽유치 노력이 실패로 끝난지 사흘,북경시의 거리는 여전히 「개방된 중국이 2000년 올림픽을 만난다」라는 구호로 도배질한 상태다.도로변에 줄지어 걸어둔 깃발이나 간판도 그대로다. 천안문 광장옆에 위치한 북경호텔의 네온사인보드 역시 아직 철거할 기미가 없다.
아쉬움 때문인가,허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인가.
중국은 아쉬워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3차 표결시까지 선두를 유지하다 막판에 두표차로 뒤집기를 당한 것도 당한 것이려니와 모든 갈등요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이다. 14년만에 감옥에서 출감한 중국 반체제의 「원점」 위경생은 북경의 올림픽유치를 지지했다. 천안문 시위의 주역 왕단도 「인권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들며 북경올림픽 유치를 지지하는 글을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다. 골프로 소일하는 전 총서기 조자양 역시 지지를 표명했다. 홍콩인들의 지지열기는 영국인 패튼 총독의 입장은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라는듯 극성에 가까웠다. 물론 한동방과 같은 반체제 지도자와 적지않은 망명유학생들은 북경의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이유는 제각각이었으나 북경의 올림픽 유치를 지지했다.
중국이 총력을 기울여 올림픽유치를 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올림픽의 이러한 통합기능에 주목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차별적인 경제발전에 따라서 점차 수면위로 떠오르는 중앙과 지방,지역상호간의 갈등,그리고 날이 갈수록 「원심력」을 키워가는 대만,그리고 이질체제인 채로 반환받는 홍콩 등 90년대 후반 중국의 앞길에는 많은 분열적 요소로 가로놓여 있다.
올림픽유치권을 따내 분열적 요소를 하나로 묶어 21세기를 막겠다는 것이 중국의 생각이었으나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올림픽유치 광고문 철거를 서두르지 않는 것은 북경 당국이 비록 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으나 그것이 갖고 있는 통합의 기능에 건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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