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2월 국회 개회식에서 이승만대통령이 보내온 메시지가 낭독됐다.『…3권분립이라지만 사법부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재판하는 사람들은 세계에 없는 행세를 하고 있다. 경찰·검찰에서 조사해서 넘기면 백방하거나 범행과 상관없는 판결을 하고 있다. 다행히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법원이 정부와 협의해서 판결하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으나 재판장의 권한에 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메시지를 들은 의원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이 대통령이 법원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한 일이란 무엇인가』 『재판을 정부와 협의해서 한단 말인가』라며 대법원장의 국회출석 동의안을 결의하자고 주장했다.
며칠뒤 김병로 대법원장이 기자들 앞에 나서 『재판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등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행정부와 협의했다고 운운하나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도 단연코 없을 것이다』라고 못박자 소동은 가라앉았다.
가인 김병로.
가난하고 어려웠던 건국후 10여년동안 국민들은 사법부하면 곧 가인을 떠올렸다. 오늘도 많은 국민들은 사법부에 확고한 정신을 심고간 가인을 기억하고 있다. 한쪽다리를 절단한 불편한 몸이지만 바짝 마른 김 노인이 대법원에 떡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시 국민들은 마음 든든하게 여겼다. 그는 양심과 정의를 바탕으로 어떠한 정치적 압력과 외풍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 등 사법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가인은 48년 8월5일 제헌국회가 자신의 대법원장 임명을 승인한뒤 본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법관과 사법부가 견지해야 할 자세를 분명하게 밝혔다. 즉 법관은 부단한 자기수양을 통해 양심과 정의에 의한 판결을 해야하고 특히 청렴결백하며 사법부는 어떤 압력과 정실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독립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임중 누누이 법관들에게 이점을 역설했던 가인은 특히 자기수양과 청렴에 자신없는 사람은 물러나라고 일갈했다.
필자가 새삼 가인을 얘기하는 것은 단지 흘러간 지사를 회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건국 초기 참다운 사법부의 정신을 정착시키려고 분연히 노력했던 자세가 오늘 우리 사법부에 너무도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사법부가 걸어온 길은 파란만장하다. 그 결과 오늘의 모습은 만신창이 그대로다. 원인은 물론 잇단 정변과 그로인한 유신5공정권의 압력과 간섭 때문이다. 이들 집권자들은 3권 분립정신에 아랑곳없이 사법부를 통치편의에 따라 멋대로 개편하고 재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위를 뿌리째 뒤흔드는 이같은 불법행위에 대해 역대 대법원장이 목숨과 자리를 걸고 결연하게 맞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정의감에 불타는 일부 법관들이 용기있는 판결로 저항했다가 면직·좌천되었는가하면 일부 선배 법관들은 들러리역에 호응하면서 권력흐름에 편승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더욱이 국가의 양심인 사법부의 장이 양심보다 확고한 국가관에 의한 판결을 강조하고 끝내 국회로부터 탄핵논의의 대상가지 된 것은 한심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문민시대의 첫 사법부 책임자로 윤관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윤 원장이 장치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시대적 흐름에 맞게 과감한 개혁,인적개혁·제도개혁·정신개혁을 통해 30여년간 누적된 안일병,눈치병,인사병,권력지향병 등을 뿌리뽑아 새로운 사법부로 일신시키는 일이다. 이같은 자기혁신을 통해서만 법과 양심의 보루로서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법원의 권위를 확립할 수 있다.
우선 축재물의와 정치적 재판에 관련된 대표적 인사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기구의 재편과 함께 운영을 개선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법관의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헌법에는 없지만 일정급 이상의 법관회의를 운영,공정한 인사와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하며 그토록 방대한 대민업무도 개선하여 「서비스 엉망」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윤관체제의 뼈를 깎는 자기혁신정리노력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해서 「가인정신」을 부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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