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불어닥친 사정과 개혁의 회오리 바람속에서 꼼짝도 못했던게 정치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인 민자당도 그랬고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여야가 모두 그 모양이었으니 국회 역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개혁정국에서 정치권은 피고석에 앉은 것과 다름없다. 특히 여당인 민자당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 모습이었다. 도덕성에서 많은 흠집이 발견된 여당이라 큰 소리는 커녕 숨소리까지 죽여야 했다.그러다 보니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게 상식처럼 되어있는 청와대와 민자당간에는 어느새 묘한 갈등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양자간의 갈등은 민자당내 각 계파간의 내분을 더욱 노골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말은 같은 집안이라고 해도 사실은 다른 집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러다가 정말 딴 살림을 차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정계개편설로까지 악화되기전에 관계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김 대통령과 민자당 의원들간의 잇단 모임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호전 움직임은 정국 전반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 같아 주목된다.
「과거는 청산하되 과거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21일의 국회연설을 신호로 김 대통령의 개혁정치로 새로운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거사를 정리하느라 사정과 개혁으로 갈라진 마음들을 한데 모으고 이제는 그런 화합의 토대위에서 미래지향적인 진전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한 국면전환의 첫 순서로 청와대민자당간의 불편한 관계를 푸는 것은 당연하다. 민자당과 언로를 활성화시켜 당정관계를 긴밀하게 회복함으로써 청와대의 독주라는 그간의 비판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뒷전에서 불평과 불만을 일삼던 민자당도 이제는 심기일전해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개혁정국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입지를 마련한 셈이다. 또다시 자기 영역을 빼앗겨 허덕이는 신세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눈치 보지말고 소신껏 국민을 보고 정치하라는 얘기이다.
재벌기업인들과의 연쇄접촉으로 재계와의 협조체제를 먼저 다진 김 대통령이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 민자당 의원들을 모두 만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 차례는 아마 야당이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여당처럼 소속의원들을 모두 만날수야 없겠지만 야당 대표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21일의 국회연설 때 박수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청와대와 국회간에 긴장과 갈등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개혁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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