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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김소영양/「제2인생의지」 또 꺾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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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김소영양/「제2인생의지」 또 꺾이려나

입력
199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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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게임」 훈련중 부상 하반신마비 불운/미 유학 꿈도 부친사망에 물거품 위기16세 소녀가 감당키에는 너무 벅찬 시련인 사지마비의 절망을 눈물겨운 의지로 딛고 섰던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 김소영양(23).

장애인 보호활동을 위한 공부에의 집념을 불태우며 줄곧 꿈꿔온 미국유학의 길이 아버지 김종열씨(51·전봉근 국교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까봐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있다.

청주여고 1년생이었던 소영양은 아시안게임을 목전에 둔 86년 8월 금메달을 향해 2단 평행봉과 씨름하다 매트에 떨어져 목뼈 4·5번의 척추를 다치는 불운을 맞았다.

전신마비 증세로 병상에 누운 소영양은 「움직여야 산다」는 강한 의지와 각계의 격려에 힘입어 조금씩 회복,투병생활 2년4개월만인 88년 12월 병원문을 나섰다. 꿈많은 여고시절을 병원서 보내고도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지만 양팔을 움직이고 글씨를 쓰게 되는 등 기적에 가깝게 회복했다.

소영양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진 병원에서보다 매사가 불편했지만,청주에서 이사온 가족들 품에서 푸근한 생활을 하며 앞으로 할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영양은 서울로 전근해 온 아버지와 사고후 수족이 돼온 어머니 홍인자씨(49)의 지극한 보살핌속에 미국유학을 꿈꾸며 우선 국내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던중 소영양은 90년 여름 장애인 예술단의 일원으로 40일동안 미국공연에 참가한뒤 장애인의 천국인 미국행을 결심했다. 동부의 뉴욕에서 서부의 LA까지 간증을 하며 전역을 둘러본 소영양은 메릴랜드 재활센터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 장애인들을 보고 자신감을 갖게 됐고 귀국후 한동안 결심을 숨겨오다 부모의 승낙을 얻어냈다.

국교 평교사로 1남4녀의 가장인 아버지는 경제적 부담을 느꼈지만,딸이 체조와 인연을 맺게 된데는 자신의 잦은 전근도 한몫했다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유학을 뒷바라지하고 싶었다.

소영양은 영어공부에 열을 올려 올 4월과 7월의 토플시험에서 5백30점과 5백50점의 고득점을 올렸다. 이후 원하는 대학의 안정권인 6백점을 목표로 정진하던 소영양은 일요일인 지난달 29일 아버지가 재직중인 봉은국교에서 잔무처리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비보를 접하게 됐다.

소영양은 『아버지는 장애인인 딸이 사회에서 꿋꿋이 제몫을 다해주길 바랐다』며 『기필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나 자신은 물론 장애인들이 능력을 펼수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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