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맑음” 중소기업 “흐림” 영세기업 “가뭄”/큰고비 넘겼지만 아직 “빠듯”/중소/정부 「돈세탁」 불구 심한 갈증/영세/비축분 많아 “돈걱정만큼은 없다”/대기업금융실명제 실시이후 기업자금 사정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대기업들은 돈이 남아돌고 중소기업들은 빠듯하지만 견딜만하고 영세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이는 등 그동안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자금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중소·영세기업들의 실명제 충격완화를 위해 1조6천억원(영세기업분 8천억원 포함)의 유례없는 「돈세례」를 퍼붓고 있지만 소규모 업체들의 갈증을 해소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8일 금융계와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직후부터 실명제 전격실시에 대비한 자금비축을 끝낸 상태여서 회계처리나 분산주식 처리 등의 「고충」은 있지만 돈만큼은 걱정없다는 태도들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대기업들의 대표적 여유자금 운용수단인 은행 기업금전신탁 잔액은 실명제 실시 전날인 8월12일 11조1천8백97억원에서 16일 현재 12조5백31억원을 기록,한달동안 올 총 증가분의 18%에 달하는 8천6백34억원이 오히려 늘어났다. 단자사 기업자금 창구인 CMA 예탁금 잔액도 실명제직후 1천억여원이 이탈했었으나 최근 돈을 맡기는 기업들이 다시 늘면서 실명제 이전보다 3천억원이 증가한 5조9천5백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담당 임원은 『금리자율화에 따른 여신금리 상승이 예상되는데다 막대한 자금을 풀고 있는 통화당국이 언제 긴축으로 돌아설지 몰라 하반기 소요자금을 미리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대 대우 쌍용 등 재벌그룹들은 하청기업들의 추석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납품전에 대금을 미리 지급하고 현금결제 대상한도를 확대하며 어음결제 기일도 한달가량 단축하는 등 「추석대비 중소기업 자금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자금여유를 과시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큰 고비는 넘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직 한도가 많이 남아있는 긴급운전자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다 대기업들의 자금결제 조기집행,금융기관의 대출심사조건 완화 등으로 사채시장 공백에 따른 자금순환 마비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실명제이후 지난달 13∼31일중 전국어음 부도율은 0.13%로 평소보다 0.02% 포인트 가량 높았지만 월말 자금결제 고비를 넘기면서 이달 들어서는 0.10%선을 유지,오히려 지난 6,7월 수준을 밑돌고 있다. 기협 중앙회 관계자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방출된 8천억원의 자금만으로도 최소한 추석까지는 견딜만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루하루 숨가쁜 돈가뭄의 고비를 견뎌가고 있는 곳은 역삼각형 자금구조의 맨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는 종업원 20인이하 규모의 영세기업들. 실명제 이후 은행과 신용금고 등을 통한 8천억원 이상의 영세기업 전용자금 방출에도 불구하고 무자료공급 중단과 사채시장 위축으로 돈줄이 막혀 대금결제와 추석이 겹친 월말 자금수요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기협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실명제이후 자금사정이 약화됐다」고 응답한 기업은 종업원수 기준 ▲3백인 이하 52% ▲1백인이하 61% ▲50인이하 59% ▲20인이하 66%로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자금난 체감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8월30일∼9월6일중 서울지역의 총부도업체 97개중 84%인 81개가 종업원 20인이하의 영세업체였으며 은행거래조차 불가능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극빈기업」까지 합하면 영세기업 자금난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계와 재계관계자들은 가분수형 자금구조에도 불구하고 일단 추석까지는 무더기 도산과 같은 커다란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통화운용의 초점이 추석과 실명전환 마감기일에 맞추어져 있는데다 은행들 또한 금리자율화에 대비해 자금운용을 초단기화하고 있어 하반기이후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영세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이성철기자>이성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