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할인후 안전하게 현찰로/명동·강남등지 전문업자 100여곳 성업/자금조사 안받는 기업에 매각 “공생”도금융실명제의 주요 타깃 중의 하나인 개인보유분 CD(유통가능한 무기명 예금증서) 자금이 실명제의 포획장치를 유유히 빠져 나가고 있다. 그동안 준비과정이나 시행과정에서 힘들게 쌓아온 실명제의 공든탑이 CD의 탈출로 자칫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CD는 종전까지 최소발행단위가 5천만원이상(지금은 3천만원 이상으로 하향조정)이고 만기가 91∼2백70일로 짧은데다 금리도 다른 금융상품보다 상대적으로 높아 큰 손들의 단골 이용수단이었다. 또 은행 자기앞수표와 같은 효력이 있어 마음대로 유통시킬 수 있는데다 소유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무기명이어서 정치권의 불법적인 정치자금 거래수단으로도 애용돼 왔다. 지하의 검은 자금이 유통되는 가장 유력한 통로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여기에 잠겨있던 자금들이 보란듯이 노골적으로 실명제 포위망을 벗어남으로써 실명제가 일반 국민들만 불편하게 하고 경기만 위축시켜 놓은 채 정작 검은 돈을 주무르는 콘 손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무력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고액자산가들과 지하의 큰 손들,거액 정치자금을 굴리는 정계 보스들이 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개인 보유분 CD자금 4조원이 그대로 달아나버린다면 실명제가 유명무실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 정부로서도 『아니다』라고 답변하기가 궁한 입장이다. 특히 정부는 CD자금 만큼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금출처 조사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일반자금의 경우에는 자금출처 조사한도를 「5천만원 초과」로 설정했으면서도 CD에 대해서만은 「5천만원 이상」으로 별도로 규정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었다. 일반자금처럼 5천만원 초과로 출처조사한도를 정하면 CD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천만원짜리가 조사에서 면제되는 허점을 막자는 조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CD가 지하 사채시장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현찰로 바뀌어 실명제의 그물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으니 낭패일 수 밖에 없다.
CD자금의 실명제 탈출경로는 대략 두가지…. 이 중에서 전문 돈세탁업자 중개방식은 돈세탁업자가 사무실을 차려놓고 시중에서 CD를 사모아 금융기관에서 CD만기자금을 현찰로 변칙인출하는 것이다. CD를 보유한 사람들은 이들 사채업자들에게서 현찰을 갖고 가기 때문에 신분노출의 우려가 전혀 없다. 전문세탁업자들은 개인적 연줄이나 광고 등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를 놓고 한창 골치를 앓고 있는 공직자나 지하경제 큰손 등 CD보유자로부터 싼값으로 CD를 매입하고 있다. 할인율은 액면가의 5∼15%이다. 만기가 지난 것도 할인율이 8%나 되는 업소도 있다. 전문세탁업자 입장에서는 하루만에 5천만원짜리 CD를 4천6백만원에 사서 4백만원을 버는 것이다. 이들은 매입자의 신원을 일체 확인하지 않는다. CD보유자 입장에서는 꼬리를 잡힐 일이 없으므로 적지 않은 할인율이지만 감수하고 판다.
명동근처 P백화점의 한 사무실 중개업자는 『만기가 얼마 남았느냐에 따라서 5∼10%로 할인해주고 있으며 20일정도 남았으면 할인율이 8%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남 제일생명빌딩 주변의 B빌딩에 있는 중개업자는 『10% 안팎으로 할인해주며 만기가 지난 물건은 할인율이 8%이다. 현찰이 준비돼 있으니 언제든지 매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강남의 신사호텔 근처 D빌딩의 업자는 『최고 15%까지 할인하지만 되도록 싸게 해준다. 만기가 지난 것은 액면가의 5%만 깎는다. 사무실을 잘못 찾는 사람을 위해 주로 신사호텔에서 만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돈세탁업소가 명동과 강남일대를 중심으로 벌써 1백여군데로 불어나고 있다. 할인율을 평균 10%로 보면 9억원으로 CD 20장을 매입할 경우 1억원이 남는 고수익사업이다. 몇장만 중개해도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전문 세탁업자들은 사모은 CD들을 적으면 몇만원 많아야 기십만원의 수고비를 주고 연고가 없는 노인정의 노인명의 등을 빌려 은행에서 현찰로 상환받는다고 금융계는 밝히고 있다. 이 노인들이 무기명 CD를 내놓고 『내꺼』라며 신분증 제시와 함께 실명으로 찾아가면 방법이 없다는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나중에 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자금출처조사를 할 수야 있겠지만 이 노인으로부터 「실명」을 빌려간 사람의 신분은 알길이 없는 일이고 이 노인들을 사후에 「문책」한다는 것도 무의미한 일일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주요 탈출로인 개인보유 CD를 법인에 매각하는 수법을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CD의 경우 개인보유분만 자금출처조사를 하게 돼있을뿐 법인보유분은 조사에서 제외시킨 규정을 악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조항을 이용해 개인보유자들은 만기전에 기업에 CD를 넘긴다. 기업의 전체 CD보유 규모는 이미 실명제를 시행할 당시인 8월12일의 발행량 12조7천억원 중에서 8조7천억원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액수이다. 나머지 4조원만이 개인보유분인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개인몫의 CD를 매입하더라도 표시가 쉽게 나지 않는다. 기업은 사채시장에서 싼값에 CD를 매입,거래중소기업에 어음이나 현금 대신 CD로 대금을 지급하고 중소기업들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 가서 자기회사 명의로 이 CD를 제시,현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탈출로가 그대로 방치될 경우 CD를 갖고 있던 큰 손들중에서 자금출처 조사를 받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명제 첫 출발점에서 특히 「독안에 든 쥐」라고 해서 공포에 떨었던 거액 CD보유자들이 한달도 안돼 탈출로가 확보되자 속으로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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