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육군 대령… 중정 대북 임무담당/공작단 해체후 사직… 등산·골프 소일김대중 납치사건에 동원됐던 당시 중앙정보부 공작선인 용금호를 지휘했던 윤진원씨(68·당시 중앙정보부 공작단장)는 누구인가. 지난 9일 용금호 조리장이었던 조시환씨(65)가 민주당 진상조사위에 나와 『용금호를 지휘한 사람은 윤진원씨』라고 증언함에 따라 이 사건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윤씨의 증언여부와 행적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기완 당시 주일 공사(가명 김재권)가 73년 8월8일 도쿄 그랜드 팔레스호텔에서 김대중씨 납치를 지휘한 사람이라면 윤씨는 김씨를 납치한뒤 사후처리 문제를 책임진 인물이다. 때문에 윤씨는 김씨를 공해상에서 수장시키려했었는지의 여부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윤씨는 한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그의 회고록에서 『김씨는 예비역 해병대령인 윤진원씨가 납치했다』고 언급해 한때 신원과 한자이름이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김대중선생 납치조사위」(위원장 김영배)의 조사에 의하면 「용금호를 지휘한 사람은 종합 11기 출신의 예비역 육군 대령인 윤진원씨」로 밝혀졌다.
윤씨의 고향은 경남 김해군 진영읍. 그는 한때 교사생활도 하다가 6·25 전쟁직후인 50년 10월24일 전시장교 양성학교였던 육군종합학교 11기로 입대해 2개월동안 훈련을 받은뒤 그해 12월23일 소위로 임관했다. 윤씨는 임관한뒤 육군 방첩부대(HID)에 들어가 활동했고 그 인연으로 5·16직후 김종필 현 민자당 대표가 중앙정보부를 창설했을 때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 장영자씨의 남편인 이철희씨(당시 중정차장보)의 눈에 들어 주로 공작단일을 맡게 된다. 공작단은 해외공작,특히 대북공작을 주임무로 맡고 있는 부서다.
그는 공작단장으로 있던중 용금호의 지휘책임을 맡아 73년 8월 김대중씨를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호송」하는 악역을 해냈다. 그는 당시 일본 오사카항에서 김씨를 태운 용금호가 무사히 떠나는 것을 보고 홍콩을 경유,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씨는 2년뒤 75년 12월 장군진급심사에서 탈락해 전역했다. 이후 윤씨는 「김씨를 납치한 추악한 정보부 요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면서 납치를 명령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토사구팽의 신세」가 되었다. 또 그해 12월24일 공작단도 사실상 해체되면서 「설 땅」마저 잃었다. 부산지역에 대한 검찰의 밀수수사에서 문제의 용금호 선원들이 밀수범으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안가에서 활동하던 안씨와 공작단의 부하들은 모두 중앙정보부 본부로 들어갔다. 중정에서는 그에게 강원도지부장 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가 중정을 시작한 시기는 여러 얘기가 있어 정확하지 않지만 공작단이 해체된지 얼마되지 않아 그만두었고 이후 별다른 일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2층 양옥집에서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으며 부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있다. 그의 집은 하얏트호텔 바로 옆,이태원 의류상가 뒤편에 있는 「군인촌」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는 지금 아무런 직업없이 남성대골프장을 가끔 찾는게 낙이라고 지기들은 전한다. 중앙정보부 간부출신들의 모임인 양우회가 매달 여는 친선골프대회에도 빠지지 않으며 가끔 북한산에 등산을 가기도 한다.<권대익기자>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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