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상황과 밀접관계/초대 김병로씨 “법조인 사표”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입법 행정 사법 3권중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가장 「고고한」 자리로 불린다. 정치권력과는 초연한 상태에서 늘 양심의 최후보루로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차례 정치·사회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오욕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48년 정부수립후 초대 가인 김병로대법원장부터 제11대 김덕주대법원장까지 9명의 대법원장 가운데 임기를 제대로 채운 대법원장은 4명뿐이며 5명이 도중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역대 대법원장은 초대 김병로,3·4대 조진만,5·6대 민복기,8대 유태흥씨 등이며 2대 조용순,7대 이영섭,9대 김용철,11대 김덕주씨 등은 임기중 물러났다. 10대 이일규씨는 임기중 연령정년(70세)을 맞아 재임 2년5개월만에 퇴임했다.
그동안 대법원장의 중도퇴진은 법원사에 큰획을 그은 사법파동과 4·19혁명,신군부 등장과 맞물려 이루어진 것으로 정치상황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임기를 채운 가인은 여명기의 사법부를 이끈 법조인의 사표로 존경받고 있으며,3·4대 조진만씨는 박정희대통령이 존경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7년3개월동안 사법부를 지켰다. 5·6대 민복기씨는 유신하에서 사법부를 어렵게 지킨 대법원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영광과 달리 사법부 역사에 오점을 남긴 제1차·2차 사법파동과 신군부 등장 등의 정치적 격변기마다 사법부 수장이 중도 퇴진하는 불운을 겪었다.
71년 현직 판사에 대한 원장의 사퇴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대규모 법관의 인사이동 등 큰 파문을 던졌으며 유신정권하 행정부의 사법부 지배를 예고한 중대사건이었다.
1차 사법파동은 법원에 의해 잇달아 내려진 공안사건 무죄판결,구속영장 기각과 대법원의 위헌판결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검찰이 당시 행정부의 힘을 빌려 결행한 것으로,표면상 「휴전」으로 마무리됐으나 사법권 독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채 봉합됐다.
88년의 제2차 사법파동은 사법권 독립문제와 함께 유신체제·제5공화국의 비정상적인 정치상황 아래 누적된 문제들이 곪아터진 법관성명 파동으로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의 도중하차를 몰고 왔다.
88년 정부·여당이 9대 김 대법원장을 재임명하려하자 야당이 반대했고 그후 정부 여당과 야당이 김 대법원장 유임에 합의하고 「대법관 임명에 야당의사 존중」이라는 타협을 이뤄냈다. 이에 법관들이 집단반발,정치권에 사법부가 종속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자 김 대법원장은 자진 사퇴했다.
그후 정부·여당은 정기승 당시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내정,국회 동의를 구했으나 여소야대 정국 아래서 부결돼 결국 이일규씨가 임명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차 사법파동은 대법관 인사가 정치권의 타협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관들의 사법권 독립요구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한편 85년 법관인사의 부당성에 항의,대한변협이 사법사상 처음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의 사퇴를 권고하고 국회가 탄핵을 발의한 것은 5공하의 정치에 예속된 사법부 위상을 나타내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법파동과 달리 4·19혁명으로 퇴임한 2대 조용순씨와 신군부 등장으로 물러난 7대 이영섭씨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물러난 불운의 대법원장으로 꼽힌다.<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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