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상호승인」 평가로 어수선/“뿌리깊은 적대종식” 환영 분위기속/“자치반대” 총리공관앞 철야 집회도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상호 승인을 발표한 9일 그 역사적 평화의 현장에 도착했다. 헤브라이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의 예루살렘은 오랜 갈등과 반목끝에 실로 제이름을 되찾아 새로운 공존의 시대를 향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런던에서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 날아온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온화한 바람이었다. 그것은 변화의 바람.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던 중동에도 이제 화해와 공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조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공항터미널에서 예루살렘이라고 외치는 호객행위를 받으며 동승한 일행은 모두 5명. 외국물을 먹은듯한 세련된 차림의 손님이 대부분이다. 유창한 영어로 한 손님이 야폰이냐고 묻는다. 행색으로 보아 일본인이 아니냐는 질문인듯 했다. 취재의 목적을 설명하니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오늘에 대해 그는 『금세기를 통해 냉전구도가 진정으로 종식된 날』이라고 역설했다.
차창밖에 스치는 풍경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고정관념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초현대식 건물옆에 고대 유적이 남아있고 모스크와 유대교회 건물이 나란히 서있는 거리. 배낭을 맨 젊은이들 앞을 양떼를 모는 아랍인이 전통의상을 입고 지나가고 그뒤를 귀밑털을 늘어뜨린 검은 옷차림의 유대인이 걸어간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조용한 가운데 현재와 고대,그리고 아랍과 유대민족 등 상반된 요소들이 오랜 세월의 부피에 녹아 들어 있었다. 다만 예루살렘으로 접어들면서 마주친 시위대들이 평온속에 도사리고 있는 긴장의 일단을 전해왔다.
숙소인 메트로폴리탄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나선 예루살렘 거리는 이런 긴장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리쿠드당 등 야당,하바드 등 종교단체 그리고 각종 시민집단들이 나름대로 입장을 표출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미 8일 상오에는 예루살렘 총리공관 앞에서 자치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철야집회가 있었다.
9일 시내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상호 승인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들을 점치느라 갑론을박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총리공관 주변에서 만난 일단의 시민단체들은 땅을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라빈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의 처사에 욕설을 퍼부었다. 「위험에 직면한 이스라엘 영토」 「반역자를 처단하라」는 격한 어조의 플래카드도 보였다.
팔레스타인의 집단거주지인 동예루살렘 구 시가지도 살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자지구와 예리코가 속한 요르단 서안,골란고원 등과 함께 67년 전쟁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이다. 구 시가지 성벽 근처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도 상호인정을 일축했다. 『이스라엘인들과는 결코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이스라엘인들을 모두 지중해로 쓸어넣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주위에서 몰려든 팔레스타인인들은 배신자 아라파트는 강경파인 하마스에 의해 처단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석양이 질 무렵 기도를 위해 통곡의 벽을 찾은 유대인은 중동평화가 여전히 요원한 것이 아니냐는 하루의 느낌들을 돌려 세워놓았다. 독실한 신앙으로 현인의 모습을 비친 그는 『큰소리를 지르는 소수보다는 침묵하는 다수가 언제나 많은 법』이라며 『급작스레 다가온 변화를 수용하려면 조그만 진통은 참아야 하지 않느냐』고 빙그레 웃었다. 그의 말들은 2천년의 바빌론 유수와 또다른 반세기의 유수가 이제 나란히 선 하나님과 알라신의 성전처럼 화해하려하고 있다는 또렷한 결론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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