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입력
1993.09.10 00:00
0 0

이승만대통령과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일본과 영국의 식민압정시절 국권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을 벌였고 건국후에는 첫 국가수반으로 선출됐으며 이 박사는 12년,네루는 17년간 장기집권을 했다. ◆다른점은 14세가 더 많은 이 박사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인데 비해 네루는 중립노선을 내세워 티토 낫셀 등과 함께 비동맹의 기수로 활약했고,또 이 박사는 학생혁명으로 하야,망명후 이역서 숨진데 비해 네루는 1964년 5월 재임중 병사한 것이다. ◆두사람은 평생 만난 적이 없으나 「앙숙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박사는 인도가 건국전 유엔위원단에 참가,남한만의 단선단정을 견제한데 이어 48년 유엔총회서 한국 승인안에 기권한 것 등을 들어 네루의 중립을 친공으로 단정,이 때문에 휴전후 포로관리를 위한 인도군의 파한을 한때 극력 반대하기도 했던 것. 반면 네루는 반공의 화신인 이 박사를 미국의 앞잡이로 생각했다. ◆51년봄 시인인 고 모윤숙여사의 유엔총회 참석후 인도에 들렀을 때 네루는 만찬을 베풀고 『이 박사가 고집(단선단정)만 안부렸으면 아시아를 위해 오죽이나 좋았겠는가.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도록 얘기해달라』면서 친필서명한 「나의 7년간 옥중생활」이란 저서와 등을 전달해 줄 것을 당부했고 귀국후 모여사가 이를 전하자 이 박사는 『글쎄,정말 화해가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인도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나라시마 라오 총리가 내한했다. 그의 방한은 철저한 중립과 등거리원칙에 따라 남북한과 62년 3월1일엔 영사관계,73년 12월10일에는 수교를 동시에 맺던 종래의 정책의 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2년전부터 야심적인 시장개방 정책을 펼쳐온 라오 총리는 인도 유력지들의 논평대로 한국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으려는 의도인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한국과 인도는 과거 경계했던 「이승만과 네루의 시대」를 넘어 미래의 동반자로 새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