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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PLO 합의도출 「오슬로채널」(TIME/본지특약 9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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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PLO 합의도출 「오슬로채널」(TIME/본지특약 9월13일자)

입력
1993.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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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중재 8개월간 극비접촉/중동지역 평화심는 밑거름/미서도 진행속도 낌새 못채/PLO 외무장관도 몰라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상호 승인은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에 평화를 심는 첫걸음이 될게 틀림없다. 그러나 승인협상은 미국이 아닌 노르웨이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이뤄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양측이 중동평화협상의 후원자인 미국을 제쳐놓고 소위 「오슬로 채널」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까지의 막후협상 과정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집중 추적했다. 9월13일자 타임지 최신호의 추적기사를 요약한다.<편집자주>

92년 12월 런던 중심가의 한 호텔에서 극비회담이 있었다. 무려 6개월간의 준비끝에 성사된 모임이었지만 불과 수시간만에 끝났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참석자인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야이르 히르쉬펠트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경제부문 책임자 아흐메드 크리아흐를 비밀리에 접촉,이스라엘 실정법만 위반한 꼴이 됐다.

크리아흐는 당시 히르쉬펠트에게 이스라엘 관리들과의 회담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제안이었지만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정부 고위관리도 아닌 학자들간의 조그만 모임이 뭔가 큰일을 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의 동료인 론 푼닥이 회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로 나타났다. 런던의 모임이 중동평화회담의 후원자인 미국조차 놀라게 만든 노르웨이 협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소위 오슬로 채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20여명정도. 이스라엘측에선 겨우 2명이,팔레스타인측에선 외무장관조차 물을 먹었다.

히르쉬펠트는 런던 회동직후 외무차관인 친구 요시 베일린을 불러 그간의 사정을 털어놨다. 베일린은 관심을 표명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그동안 팔레스타인측과의 막후협상 채널을 마련하는데 전권을 휘둘렀으며 협상진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 히르쉬펠트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지에서 학술조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과학연구소의 테리에 로에드 라르센을 만나 협정을 요청했다. 라르센은 의외로 노르웨이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갖고 왔다.

이로써 협상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히르쉬펠트와 크리아흐를 비롯한 양측 협상팀은 지난 1월 오슬로로 날아갔다. 그후 8개월동안 이들은 한번에 2∼3일씩 걸리는 협상을 간격으로 무려 14차례 가졌다. 이들의 행각은 노르웨이정부의 지원아래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이들은 각기 다른 비행기편으로 도착했으며 노르웨이 경찰이 협상팀을 오슬로시 안팎의 비밀회담장으로 빼돌렸다. 19세기 장원에서,번잡한 시중심가의 호텔에서,허름한 농가에서,요한 요르젠 홀스트 노르웨이 외무장관 공관 등에서 밀회는 계속됐다.

히르쉬펠트는 자신들이 정부의 공식 대표라기 보다는 협상 탐색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베일린을 통해 페레스 외무장관,라빈 총리와 계속 접촉했다. 회담 초기에는 이스라엘측에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상대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지시를 받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은 회담이 계속되면서 해소됐다. 전화통화후에 보이는 팔레스타인측의 반응으로 미루어 통화상대가 아라파트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라빈 총리는 회담에 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3월까지 페레스에게 좀더 접근하도록 허락했으나 여전히 비공식 오슬로 채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양측이 이견을 절충,합의 초안을 마련하는데 노르웨이측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회담분위기도 많이 작용했다. 적대적인 양측이 음식을 같이 먹거나 인근 숲속을 거닐던 단계를 뛰어넘어 함께 와인을 마시고 비디오,TV를 같이 시청했다. 특히 홀스트 장관 공관에서는 그의 아들인 네살배기 에드바드와 함께 뒹글며 놀기도 했다. 5월까지 양측은 초안을 마련했다. 드디어 이스라엘 외무관리 우리 사비르와 요엘 싱거가 노르웨이로 날아와 협상에 참가했다. 이때 아라파트와 라빈은 오슬로 채널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성명초안의 문구조정작업에 들어갔다.

협상팀은 때로는 24∼36시간 마라톤회담을 계속하면서 수없이 초안 개정작업을 진행했다. 『우리는 초안을 만들고 또 만들고 그리고 개정했다』고 푼닥을 회고하면서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도 인간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좋은 상태에서 협상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8월20일 페레스가 입회한 가운데 크리아흐와 사비르 등이 초안에 서명했다.

8월27일 페레스와 홀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인트 문구에 있는 해군 공군기지로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을 방문,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크리스토퍼는 즉각 백악관으로 보고했고 미국은 지지성명을 발표했다. 워싱턴측도 이스라엘과 PLO간에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감지했으나 회담의 속도와 범위에 대해서는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다. 미국측은 양측이 비밀채널을 통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미국은 합의를 위한 양측의 끈질긴 노력과 노르웨이측의 깊은 호의를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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