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빈아라파트,「땅평화」 맞바꿔/양측 강경파 반발·자치지원 난제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호 승인은 냉전종식의 계기가 된 베를린장벽 붕괴에 필적할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다. 1백년에 걸친 뿌리깊은 중동분쟁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번 승인을 통해 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본격화된 대결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타협과 공존의 길을 택했음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4차례에 걸친 전면전과 끊임없는 유혈공방을 되풀이했던 이스라엘과 아랍진영의 지역세력판도도 급속히 재편될 것으로 예견된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평화정착을 위한 기초가 다져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온건노선에 바탕을 두고 추구해온 타협이 첫번째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특히 무력투쟁으로 일관해온 아라파트가 그간 이스라엘과의 막후 접촉을 통해 「점령지내 전면 자치 실시」라는 PLO의 기존 정책노선을 포기하는 등 양보적 성격이 강한 정치적 단안을 내렸다.
여기에는 ▲걸프전 이후 아랍진영내에서의 PLO 위상약화 및 심각한 재정난 ▲PLO 맞수인 회교원리주의세력 하마스의 영향력 강화 ▲미국과 친미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화평압력 등이 주요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 24년간 PLO를 주도해왔던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매도자」라는 강경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이스라엘과 협상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은 라빈 총리의 끈질긴 회유책도 한몫했다. 「무력우위를 통한 평화확보」라는 전임 샤미르 총리의 안보논리를 뒤집고 작년 7월 취임한 라빈은 「땅과 평화의 교환」으로 과감히 정책을 전환,대팔레스타인 협상에 유연한 태도로 임해왔다. 크게 골란고원 및 가자지구,요르단강 서안 등 3개 지역으로 나뉘어진 이스라엘 점령지를 아랍진영에 반환대신 이스라엘의 평화를 받겠다는게 라빈 구상이었다.
이스라엘과 PLO가 막후교섭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은 91년 10월 마드리드에서 재개된 중동회담이 공전을 거듭하면서부터다. 특히 이스라엘에선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PLO측에선 2인자격인 아부 알라가 나서 올초부터 오슬로에서 14차례 이상 막후접촉을 배후 조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 접촉에서 67년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에서 팔레스타인의 단계적 자치 실시 및 상호승인에 원칙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양측의 물밑대화는 상호승인 문제와 관련,「팔레스타인 국민헌장」이라는 암초에 걸려 난항을 겪었다. 64년 PLO가 총 33장으로 제정한 팔레스타인 국민헌장은 「이스라엘의 타도」 등 노골적인 적대노선을 담고 있는 한편 팔레스타인의 무력투쟁을 공식적인 저항방법으로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이미 88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 인정과 무력노선 포기를 언급하면서 국민헌장의 발효중지를 천명한바 있지만 이스라엘측은 이를 거부한채 PNC 등 공식 의결기관을 통한 선언을 요구했다. 양측 실무교섭에서 다소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호 승인은 13일 조인예정인 팔레스타인 1단계 자치 합의와 더불어 항구적인 중동평화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향후 「가자예리코지역」에서 실시될 5년간의 팔레스타인 과도 자치기간이후 들어설 팔레스타인 민족의 국가성격 문제 등 양측이 극복해야할 난제들이 산적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먼저 아라파트와 라빈은 거세지는 강경파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선결과제다. 더욱이 PLO 의장 사임압력은 물론 암살대상으로마저 지목되고 있는 아라파트의 계속적인 실권장악 여부가 문제의 관건이다. 이와함께 실리아,레바논,요르단 등 주변 아랍진영의 PLO에 대한 계속적인 PLO에 대한 계속적인 지지여부도 중요하다. PLO에 대한 이들 국가의 지원이 미약할 경우 이는 아라파트의 위상은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자예리코」 자치지구에 경제자립여부도 향후 중동정세에 주요변수이다. 자치성공의 열쇠인 경제복구에 PLO 집행부가 실패할 경우 이스라엘에는 계속적인 점령명분을 제공하는 한편 PLO의 수권능력에도 의구심이 증폭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핵심변수는 라빈정권의 대팔레스타인 자치기구 정책이다. 자치지구내 전력 상하수도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이 미흡해 이스라엘의 지원없이는 경제자립이 불가능하고 서방측의 원조마저 이스라엘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
양측은 이번 상호승인을 통해 평화정착의 극적인 돌파구는 열었지만 영구적인 평화를 단언하기엔 아직은 때이른 감이 없지 않다.<이상원특파원>이상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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