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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문화협력/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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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문화협력/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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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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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다음주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온다. 오랜 한불간의 역사로 보면 너무 늦은 국가원수의 내방이다.실상 우리나라가 서구의 여러 나라중 가장 먼저 관계를 맺은 것이 프랑스였다. 1836년 프랑스인 신부 모방이 가톨릭의 전파를 위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서부터다. 서학이 일찍 중국을 통해 들어오기는 했지만 서양인에 의한 선교활동은 처음이어서 프랑스는 유럽문화의 원천을 우리에게 전해준 최초의 유럽국이었던 셈이다.

이 선교활동이 박해를 당하면서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이때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서고에 있던 3백40여권의 책들을 가져갔다. 이것은 약탈이었지만 우리의 문화재산이 서양에 대량으로 건너간 첫 케이스다.

1887년 초대 프랑스 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는 전후 13년간 서울에 머문 끝에 수많은 고서·골동·서화를 수집 반출했다. 그 속에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속칭 「직지심경」)이 있었다. 이 「직지」는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가있다. 우리 문화의 세계적 자랑을 프랑스가 뽐낸다.

신라승 혜총의 귀한 「왕오천축국전」을 소장하고 있는 것도 파리의 국립도서관이다. 1908년 중국 감숙성의 돈황석굴에서 이 문서를 발견한 사람이 프랑스인 펠리오였다.

프랑스인들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도 이바지했다. 그중에는 한말기의 모리스 쿠랑이 있다. 서울주재 프랑스총영사관 통역으로 근무한뒤 귀국한 그가 우리나라 문헌을 총정리한 「 조선서지」(1896)는 우리의 서지문화를 처음으로 서구에 소개한 것이다. 그는 최초의 한국안내 책자도 냈다.

한국인으로 프랑스에 맨 먼저 발을 디딘 홍종우가 1890년부터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로니라는 사람은 그의 도움으로 「춘향전」을 번안해 냈다. 이것이 우리 문학을 유럽에 처음 번역 출판한 것이 된다.

이번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이런 한불간의 문화관계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먼저 병인양요때 빼앗아간 강화도 외규장각의 도서를 반환받자는 여론이 높다. 규장각 도서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대측은 91년 프랑스정부에 반환요청을 했으나 부정적인 반응이다.

우리가 되찾고싶은것 중에는 또 「직지」가 있고 「왕오천축국전」이 있다. 지난 86년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 개관을 할 때 박물관측은 이 두 문서의 대여전시를 프랑스정부와 교섭했다. 파리의 국립도서관측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해 결국 무산되었다. 그해 전두환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했을때 프랑스정부는 이 두 「보물」을 끄집어내와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기만 하고는 도로 집어넣어 버렸다.

1978년 강화서고의 문서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씨에 의해 비로소 발견되었을 때의 흥분을 당시 이 기사를 보도한 특파원이었던 나로서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이 박씨의 도움으로 국립도서관의 동양서적관 깊숙이에 감추어진 「왕오천축국전」 두루마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당나라 사람의 필사본이라고는 하나 그 누런 황마지의 천년 묵은 빛깔속에 신라인의 목소리가 바래지않은 먹글씨로 낭랑했다.

「직지」의 인쇄처인 청주의 흥덕사터가 1985년 발견되어 이 자리에 고인쇄문화박물관이 작년에 세워졌다. 지난 8월27일부터 이 박물관에서 「책의 해」를 기념하는 옛 인쇄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지만 정작 「직지」는 영인본으로 대리전시된채다. 이것이 분하여 한국 청년지도자회 서청주지회가 「직지」 되찾기 서명운동을 지난주부터 전개중이다.

문화재에도 피가 있다. 고문서의 글씨 하나에서도 선인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문화재가 고국을 떠나서는 그 숨소리를 잃는다. 고토에서라야 생명력이 있다. 강화문서나 「직지」나 「왕오천축국전」은 고국에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다. 최소한 장기대출의 형식으로라도 우리 문화유산의 환국이 관철되어야 옳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는 아무 연고 없는 미국에도 나가고 일본에도 나갔다.

대한제국은 1900년의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여 서화 등 우리 고유문화를 처음 유럽에 선보였다. 지금 개최중인 대전 엑스포에는 프랑스가 TGV 고속전철을 내놓았다. 최근 프랑스는 TGV의 오랜 숙원을 풀었다. 이제 한불관계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문화협력에서도 한 전기를 마련해야 할때다. 우리 실향문화재의 정위치 복귀는 그 기반이 될 것이다.

마침 금년들어 지난 4월에는 우리 문화예술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한국예술제가 파리에서 열렸다. 오는 10월에는 한국영화제가 퐁피두센터에서 개최된다. 근년에 와서 한국문학의 프랑스어 번역출판이 제법 활발하다. 파리의 기메박물관 한국실은 우리 정부의 지원으로 확장된다. 프랑스는 우리문화를 유출 아닌 진출로 유럽에 전파시킬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오랜 한불문화관계에 있어서 올해를 새로운 기원의 해로 만들기 위해 한국에 와야한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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