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측 지나친 통제에 자율성 실종/학생회 조직불구 겉치레운영 많아/학생도 입시부담이유 임원맡기등 꺼리기도책임있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민주시민교육은 학교교육의 중요한 몫이다. 고교과정은 시민교육의 장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역할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30여년에 걸친 권위적인 군사통치 기간에 누적된 지역·계층간 갈등과 각종 부조리를 청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시·도교육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신한국 창조는 새로운 교육에 의해 길러진 새로운 인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며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함양시키는 교육을 당부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고교들이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시대의 요청과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아직도 우리 고교는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계발하는데 필수적인 학생자치활동을 제한하고 오로지 대학진학을 위해 학교의 지시에 순응토록 하는 획일적이고 체제순응적인 교육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교에는 학생자치활동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학생회 활동,학급활동,클럽활동,학교행사 등 자치활동에 속하는 교과과정은 통칭 특별활동으로 불린다. 그나마 고교의 특별활동은 전 교과활동의 5% 범위에서 이루어지도록 시간이 배당돼 있다. 고교의 학생자치활동이 이처럼 위축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그중에서도 전교조 사태 등 교단 민주화운동의 여파를 간과할 수 없다.
학생자치의 근간은 역시 학생회라고 할 수 있다. 고교의 학생회는 유신체제이후 준군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학도호국단으로 바뀌었으나 86년 교육부(당시 문교부) 지시에 의해 다시 학생회로 환원됐다. 이후 고교에서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자치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직선으로 학생회장을 뽑는 고교가 88년 56개교,89년 1백12개교로 급증했고 90년엔 전체 고교의 56.6%인 2백58개교가 직선제 학생회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같은 학생자치활동의 활성화 추세는 89년 전교조 출범이후 교육당국과 학교측의 집중적인 단속으로 급격히 위축되면서 적지않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겼다.
학생회의 활동이 87년 6월이후 고조된 사회일반의 민주화운동에 영향받아 학내 민주화와 비리척결 요구로 흐를 움직임을 보이자 교육당국과 학교는 학생회 활동을 대폭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특히 학생회가 전교조 가담교사들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자 각 고교는 학생활동에 적극적인 학생에 퇴학·무기정학 등 강경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90년 1학기 전남 B상고에서는 학생회에 대한 학교측의 지시에 불응한 학생회장이 무기정학을 당했다. 서울 D고는 학예제 행사의 프로그램을 문제삼아 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 5명을 퇴학시키는 등 22명을 징계했다. 이밖에 광주 D고·K고,서울 M고·K고 등에선 4·19기념물 배포를 이유로 학생회 관련학생들을 퇴학시키거나 무기정학시켰다. 대천지역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을 맞아 망월동 참배에 나선 고교생들이 무더기 징계됐고 서울 D고·J고에선 학생회 활동일지에 불온한 내용이 적혀있다는 이유로 관련학생들이 강제 전학되기도 했다. 이와함께 상당수 학교는 탈춤 등 특별활동마저 금지하고 있다.
교육당국과 학교측이 취한 조치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일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으나 학생자치활동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금기시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대신 보충학습과 자율학습 등 입시교육이 더욱 강화돼 학생들도 점차 학생회 활동을 기피하게 됐다.
이 시기 민주교육실천협의회에서 서울시내 남녀고교생 4백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학생회가 민주적인 학생자치 조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37%인 반면 나머지는 군대식 명령체계로 움직이는 조직·학교 행정조직의 일부라고 답변했다. 학생회의 문제점으로는 학교측의 간섭과 통제(47%),학생들의 인식부족(25%)이 지적됐다. 특히 학생회 운영방식에 대해선 65%가 학교에서 제시한 주체를 토론한 뒤 기록만 하는 회의라고 응답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교육부의 한동현장학관은 『학생들의 자치활동 능력은 날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그 책임은 근본적으로 교육당국과 학교,교사가 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50년대말 고교를 졸업한 한 장학관은 『당시만 해도 확고한 교육철학을 지닌 선생님 지도하에 다양한 학생자치활동을 할 수 있었다』며 『나 자신 일선교단에서 오랫동안 가르쳤지만 과연 제자들을 인격체로 대하며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했는가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경복고 교장·교육부 장학편수실장을 지낸 박용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은 『자녀들에게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들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교단경험으로 미루어 볼때 공부만 열심히 한 학생들보다는 반장이나 학생회장 등 다양한 학내활동을 한 학생들이 사회진출 이후 각 분야에서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강남 S고의 K교사는 『요즘 학생들은 스스로 학생회 간부 맡기를 기피할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대다수가 말리고 있다』며 『간혹 자녀가 학생회장으로 뽑히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이들도 자녀가 일단 반장이나 학생회장으로 뽑힌 뒤에는 될 수 있으면 공부를 방해하는 일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다시 부탁한다』고 말했다. 결국 일종의 허영심에서 자녀가 반장이나 학생회장이 되기를 바랄뿐 학생회 간부로서 봉사하는 것은 적극 말리는 것이다.
역시 서울 강남의 K고 L교사는 『학생회장 선거가 다가오면 학생주임 등 교사들이 모여 특정학생을 지명한 뒤 학생회 대의원인 각반 반장들에게 그 학생을 학생회장으로 뽑도록 설득한다』고 털어 놓았다.
60년대 중반 서울 진명여고를 졸업했다는 한 여교사는 『여고시절 1년에 한번 하는 운동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회가 주관하고 조회때도 교장선생님은 훈화만 하고 진행은 학생들이 하는 등 학생자치활동이 활발했다』며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기회가 주어져도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전문가들은 일선교사들의 이같은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적절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자치활동을 권장해온 학교들은 매우 높은 교육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학교가 경남의 거창고(교장 도재원)이다. 학생수 2백여명의 남녀공학인 이 학교는 대학수준의 학생자치를 실시하면서도 92년기준 94.2%라는 전국 최고수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학교는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건학이념에 바탕해 교육당국이 학도호국단체제를 강요했던 시절에도 학생들이 직접 학생회장을 뽑는 학생자치를 실시했다.
이 학교는 봄·가을 각각 3일간의 축제와 예술제를 벌인다. 이 행사는 기획,예산편성 및 집행,프로그램 마련 등 모든 절차가 철저하게 학생자치로 이루어진다. 1학기 봄축제는 3학년 학생들이 주관하고 2학기 가을예술제는 새로 구성된 학생회를 중심으로 2학년 학생들이 주관하는 등 세대교체와 전통의 대물림도 체득한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학생자치활동의 교육적 효과는 기대 이상입니다. 공동체의식의 함양뿐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르는데도 효과가 있지요. 이런 교육방식은 공부하는데도 반영돼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이 학교 고승안교감의 말은 학생자치활동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세일등 4개교 축제 운영실태/프로·예산안등 학생들이 주관/교사·동문참여 유도… 정나누기
고교축제는 학생자치활동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입시위주 고교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특별활동 등을 통해 나름대로의 고교문화를 창조하는 마당이다.
전국의 고교중 비교적 축제를 특징있고 자치적으로 잘 진행하고 있는 학교들을 찾아 소개한다.
▲세일고(인천)=학생회 임원과 각 동아리회장 등 11명의 학생과 7명의 교사로 구성된 추진위원에 의해 9월말께 이틀간 「철마대동제」를 개최한다.
세일고의 경우 직선제 이후 활성화된 학생회와 동아리회장들이 축제 준비와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일간의 축제는 방송부 과학부 철학부 시사부 등의 동아리들이 중심이 돼 실내에서 각종 전시회와 발표회를 열고 실외에서는 밴드공연 가장행렬 마당극공연 굿판 음악제 탈춤 선생님장기자랑 게임 콩트 육체미대회 등이 이어지며 대동놀이로 막을 내린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충남 홍성)=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는 「풀무제」를 10월말께 3일간 매년 정한 주제에 따라 연다.
이 축제는 축제일중 하루를 잡아 학생들이 직접 가꿔 수확한 쌀로 떡을 해 전교생과 교사들이 한자리서 나눠 먹는 추수감사제의 의미를 띠는 프로그램과 국화반 학생들이 가꾼 다양한 국화 분재 양란 등을 전시·판매하는 국화전시회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남원상고(전북)=매년 가을 열리는 「남촌제전」은 다채로운 내용으로 2일간 펼쳐진다.
이 축제는 연극 등 몇몇 프로그램을 빼고는 대부분 팽이치기 새끼꼬기 제기차기 윷놀이 장기시합 등 학생들이 학년구분없이 승부를 겨룰수 있는 민속놀이로 이뤄져 선후배가 함께 정을 나눌 수 있게한 게 특징이다.
또 줄다리기 기마전 씨름 등의 민속놀이도 학급별로 진행되며 각종 장기자랑을 하는 모닥불행사도 펼쳐진다.
▲거창고(경남)=거창고에서는 매년 봄·가을 두번에 걸쳐 「예술제」는 예산편성 집행 홍보프로그램 제작 심판 진행 시상까지 축제의 전과정을 학생회에서 주관하며 교사는 협조자의 역할만 한다.
봄에 열리는 개교기념예술제는 4월중 사흘동안 개교기념행사를 겸해 열리는 것으로 주로 다양한 운동경기가 벌어지며 가을예술제는 합창대회 연극대회가 이틀에 나눠 펼쳐진다.
이 학교 축제의 특징은 축제와 관련된 모든 일을 학생회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이원락·김현수·장인철·여동은·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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