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만큼 세금내야” 인식 제도화/특정부문 혜택 축소 “형평” 비중이번에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국내 조세체계의 기본골격을 선진국형으로 바꾸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거대한 지하경제가 밖으로 노출돼 모두가 있는 그대로,또는 벌어들인 그대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 세율은 높지만 감추는 소득이 많았던 후진형에서 세율은 낮지만 감추는 소득이 없는 선진형으로 기본틀이 바뀐다. 특정부분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까지도 대폭 축소,계층간 형평뿐만 아니라 부문간 형평도 동시에 추구된다.
이번의 세제개편은 실명제를 시행하면서 우선 만들어낸 일종의 예비틀이다. 96년의 이자소득 종합과세 및 토지공개념법의 공시지가 적용 등을 앞두고 95년에 선진형 조세체계의 완결편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같은 세금을 걷더라도 지하경제 때문에 형식세율은 높고 과표(세금을 부과하는 기준 소득금액)는 낮은 후진형에 머물렀다.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세율은 선진국보다 높은데 결과적으로 나오는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외국보다 낮은 것이다. 워낙 과표가 낮고 빼먹는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납세자들로부터 세율이 너무 높아 기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등 비판을 들으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매출누락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낳았다. 실제매출과 과표를 따로 관리하는 이중장부가 당연시됐고 부자들의 상속증여에 대해 『법대로 내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있었다. 이와같은 후진형 조세체계는 아예 『세금 안내고 개인적으로 챙기는 몫이 있어야 기업을 한다』는 식으로 마치 세금 빼먹기가 죄이기는 커녕 불가피한 사회현상인양 인식될 정도에 이르렀었다.
이제는 금융실명제의 시행으로 세율은 낮되 과표는 실제에 맞게 현실화하는 선진형으로 세제가 바뀌게 된다. 세원의 노출로 납세자들이 「있는 재산」 또는 「번 소득」을 그대로 세금내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금을 빼먹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종전에 비해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 이에 따라 세율인하의 여지가 생겨난다.
이러한 세제문화에서의 질적 변화는 지금까지 세금망을 피해있던 거대한 지하경제가 금융실명제에 의해 대부분이 포착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다.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재무부의 주장도 그만큼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근로소득자만이 소득누락 없이 꼬박꼬박 세금을 내 봉급자의 주머니가 「유리지갑」이라는 비유까지 나왔는데 다른 소득들도 이제는 과세권안에 편입돼 봉급자만이 상대적으로 중과세 당하는 일은 이제 없어지게 됐다.
아울러 초기 경제발전 단계에서 기업에 상대적으로 중점 지원됐던 세감면혜택도 처음으로 대폭 손질됐다. 공정경쟁과 형평보다는 고도성장과 불균등 지원이 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정책금융으로 돈을 기업에 몰아줬듯이 세금공제로 기업에 적극적인 생산과 투자를 유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후진형이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금융부문에서 정책금융이 축소대상이 되고 있듯 세제부문에서도 감면혜택이 줄어드는 추세로 가고 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포함하는 소득세,기업의 법인세,상속·증여세,부가가치세 등의 세율이 전반적으로 낮아졌으나 내년도의 세수는 올보다 1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경제성장의 토대인 사회간접자본 확대만을 위해 쓰도록 휘발유와 경유에 목적세가 신설돼 1조2천억원 정도가 더 걷히는 탓이다.
재무부는 내년에 실명제로 인한 과표현실화로 세금이 늘어나는 액수와 세율인하로 세금이 덜 걷히는 액수는 서로 비슷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세부담률이 크게 변동이 없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가 대략 GNP(국민총생산)의 20% 수준이라고 볼때 금융실명제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축이 극심하지 않는한 내년도 세수증가는 세율인하폭을 웃돌아 조세부담률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조세부담률은 19.4%였다. 아직 일본의 20.7%(92년),미국의 21.2%(89년)보다는 낮지만 세율을 그대로 둘 경우 신경제계획기간중에 목표치 22.5%도 넘어설게 확실시된다. 세율인하의 여지가 아직도 더 남아있는 것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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