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입시제도가 이미 시행 첫 단계를 넘긴 이 시점에서 이 새 제도가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있다는 지적이 거세게 대두되고 있다.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인지 전반적 지능테스트인지 성격이 분명치 않은 수학능력시험과 대학의 본고사를 골격으로 하는 1994학년도 개혁안이 3년전 발표되었을때 이미 복수지원의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한 그 제도는 수험생들의 심리적 부담을 심하게 가중시키고 고등학교 교육 전체를 파행으로 몰고갈 우려가 있다는 지적과 비판이 강하게 일었었다. 그런데도 그러한 지적들에 대한 적절한 답변도 없이 몇몇 교육부 단골 학자들의 시안을 마치 국민적 합의의 결과인양 교육부가 행정직권으로 밀어붙이다가 뒤늦게야 대학의 자율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본고사 수행 여부 및 시험날짜 결정에 대한 책임을 대학측에 밀어버린 결과가 오늘 이 혼란스런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우리 수험생들은 언제나 실험용 쥐의 신세를 면할 것인가.진학 희망생들은 누구나 다 자기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좋은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를 시도하고,대학 역시 되도록 좋은 학생들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며,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교육행정 당국이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러한 경쟁이 교육효과를 최대한으로 내는 방향으로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진학기회에 관한한 그것이 내신성적이든,학력고사이든,대학별 시험이든,품행과 특성까지를 측정하는 어떤 방법이든간에 그 평가기준에 따라서 좋은 성과를 거둔 학생들은 예외없이 자기의 소망과 성취도에 걸맞게 진학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눈치보기와 운에 따라서 합격과 불합격의 희비가 갈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서울대에서 1점차 또는 동점으로 떨어진 학생이 그 다음으로 희망하는 대학은 고사하고 자기보다 성적이 휠썬 못한 학우들이 입학하는 다른 대학에 진학할 기회마저 놓치고,만년 재수생이 되는 것은 개인은 물론 국가적 차원의 불행이다. 이것은 성적 상위권에서만이 아니고 중위권,하위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들 모두가 서울대학교 시험날짜에 맞춰 시험을 치르기로 결정함으로써 복수지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본고사를 치르지 않는 대학들에서도 복수지원의 실질적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학과의 정원이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학별로 원서를 접수하는 한,전기 후기를 나누고,계열별 이동을 막기위한 감점제를 실시하는 등 별별 복잡한 조치를 강구해도 복수지원의 효과를 거두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개혁의 의도만 확고하다면 해결책은 뜻밖에 간단하다. 수험생들로 하여금 대학별로 지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대학의 담을 헐어서 계열별로 지원을 하고,그 안에서 경쟁하도록 지원방법을 바꾸면 된다.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들을 그 학문적·교육적 특성에 따라 현행의 단과대학 정도의 계열로 구분하여 함께 묶고,대학 진학 희망생들은 그중 한 계열을 선택하게 한다.
성적이 나온후 학생들은 자기가 선택한 계열에 속하는 모든 대학의 모든 학과 가운데서 자기의 희망과 성적을 고려해서 5∼6학과를 선택하여 희망순으로 원서에 나열한다. 계열별로 원서가 접수되면 가장 성적이 좋은 지원자부터 차례로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도록 자리가 주어진다. 1지망에 이미 자리가 찼으면 2지망,3지망으로 자동적으로 선택의 순위가 내려간다.
이 제도안에서는 요행이 작용할 근거가 없어지므로 수험생들의 심리적 부담이 크게 줄고,우수한 재수생이 양산되는 손실도 사라질 것이다. 보다 좋은 학생들을 자기대학에 진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대학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질을 향상시키고 장학금을 늘리는 등의 부담을 안게 됨으로써 경쟁적 발전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며,억울하게 탈락하는 재수생이 없어 성적 상위권의 학생들이 전국의 대학들에 분포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학들간의 질적 격차는 크게 줄어들고,진정한 의미의 특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현행의 내신과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선발방안과 전혀 무리없이 배합될 수 있으며,예체능계열처럼 실기고사 또는 다른 특수한 형식의 전형준거를 첨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진다면 대학별로 요구하는 특수 논술시험이나 다른 요구사항이 단지 그것이 모두 같은 날 실시되는 시험이 아니라는 조건 아래서는 이러한 복수지원제도와 배합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대학의 자율권이라는 이름 아래 대학별 고사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학들은 결국 그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뽑게되는 것이지,대학별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 그 판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수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를 하고 채점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대학의 자율이나 발전에 반드시 도움되는 일도 아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율이라는 명분아래 부정이 저질러질 수도 있다.
교육내용이나 제도적 기틀,시행 비용 등의 측면에서 큰 부담이 없이 수험생들을 심리적 부담에서 해방시키고,자기의 실력에 맞는 최선 또는 차선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하고,불합격자들이 대학 대신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데 대해 불평없이 승복하는 태도를 길러줄 수 있는 이러한 간편한 대안이 있음에도,그것을 신중히 검토해 보지도 않고,지금까지와 같은 문제 많은 지원제도를 고집한다는 것은 정책결정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학생 전체에 미치는 교육심리적 효과라는 대의보다도 당장의 자기입장을 감싸는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쟁의 부담 일부를 학생들로 부터 떼내어 대학에 돌림으로써 우리의 젊은 싹들도 탈락공포증에 떠는 대신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처럼 『꼭 우리대학에 지원하십시오』하는 대학들 앞에서 가슴을 내밀 수 있도록 대입제도를 뒤엎는 일이 신한국 건설의 최우선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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