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세계 여자 유스 배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질리나는 올초 체코와 분리된 슬로바키아의 3번째 도시. 서울로부터 40여시간의 비행기 여행후에 도착되는 이역만리이다.그러나 아침 출근거리에서 엑셀,르망승용차와 마주치고 「란트라」란 이름으로 팔리는 엘란트라 자동차전시장을 발견하면서 인구 12만명의 이 작은 도시는 기자에게 한결 친근하게 와닿았다.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대회 홍보위원장이 대낮부터 거듭 건배를 청하면서 『대전엑스포에 질리나가 섬유제품 80점을 내놓았으니 관심을 가져달라』 『저 앞의 OTF TV는 한국 금성사와 기술협력으로 만든 것이다』 『새로 출발하는 슬로바키아와 손을 꼭 잡자』는 등의 기분좋은 말로 한국기자를 한껏 우쭐하게 만들었다.
경기장에 들어가니 태극기가 지난 대회 우승팀의 자격으로 12개 참가국 국기중 한 가운데 걸렸다. 28일 터키와의 첫 경기가 시작될 즈음 멀리 프라하에 주재하는 민병석 체코·슬로바키아 겸임대사가 도착하고 삼성슬로바키아 합작의 냉장고 제조회사인 「삼성칼렉스」의 한국인 직원 40여명이 왕복 6시간 거리의 즐라테로부터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몰려와 이역만리의 경기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코리아의 물결로 요동쳤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기자의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을 마음껏 뽐내는 무대에서 무대 주인공인 대표선수들이 입은 유니폼과 신발이 온통 일본상표인 것이다. 사정인즉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선수들은 반드시 세계배구연맹 후원업체인 일본 아식스,미즈노 상표의 의류·신발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팀은 국산제품에 일제상표를 새겨넣고 나온 것이다. 다른 종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프닝이다.
17세 이하의 어린선수들마저 상업주의에 이용되고 있다는 분노를 접어두고라도 당장 「한국 배구선수들이 언제까지 외국상표 홍보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생각하면 어린 선수들의 힘찬 스파이크에도 흥이 날 수 없는 노릇이다.
스폰서 대열에 끼지 못하는 한국의 영세한 스포츠용품 메이커들을 원망해야 할지 아니면 세계 상위권의 실력을 갖고도 국제무대에서 뒷전으로 처지는 한국배구의 외교력 부족을 탓해야 할지,착잡할 뿐이다.<슬로바키아 질리나에서>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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