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난제없이 무난하게 진행돼온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가로막고 섰다. 바로 10년전인 83년 9월1일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한공(KAL) 007기 배상문제다.우리의 기대와는 달리,그리고 그동안 러시아측이 보여준 태도와는 달리 옐친 대통령 직속 KAL기 사건 조사위원회는 사건의 책임을 KAL기 조종실수에 돌리는 결정을 내렸다. 30일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이러한 결정은 「뜻밖」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와함께 러시아측은 1일 사할린에서 거행하기로 했던 희생자 추모행사도 격을 낮추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아 밝혀졌다(연합통신 보도).
러시아측의 이러한 태도변화는 지난 6월15일 최종 결론지어진 유엔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조사보고서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보고서는 크게 봐서 세가지 초점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소련이 사할린 영공으로 들어온 KAL기가 민간여객기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취하지 않은채 격추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비행기가 민간여객기임을 표시하는 『항행등과 점멸등이 켜져 있다』는 전투기의 보고를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문제의 KAL기가 조종상 실수로 정기항로를 이탈,사할린 상공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피해자인 한국이나 국제민항기구의 이 조사보고는 사후처리에 있어 판단기준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보고에 의하면 소련측이 KAL 여객기를 「정찰기」로 오인했다는 주장은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국제민간항공의 상식은 항로이탈 여객기에 대해 적절한 식별절차와 이행을 통해 안전을 보장하도록 요구하는데에 있다. 더구나 대한항공 여객기의 경우 당시 소련의 지휘부가 민간여객기임을 알고 있었다는 심증을 갖기에 충분하다.
옐친 대통령을 비롯해서 러시아 당국은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혀왔다. 이번에 러시아정부의 공식 결론이 뜻밖의 방향전환을 한 것은 지배권이 미치는 한도안에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과거 소련의 논리로 복귀한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것은 냉전시대의 대결논리요,비인도적 패권주의로의 복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냉전의 끝장과 함께 동북아에 새로운 화해와 평화체제가 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 협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고 또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의 비극은 반드시 합리적으로 청산돼야 할 일이다.
러시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민간여객기 격추에 대해 응당 져야될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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