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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선거의 조건/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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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선거의 조건/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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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로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된 가운데 핵심주체세력들은 비밀리에 정당조직작업을 진행했다. 훗날 두고두고 비난대상이 된 사전조직으로 생겨난게 민주공화당이었다.공화당은 우리나라 정당사상 처음으로 운영에 있어 2원조직,즉 사무국제도를 채택하여 눈길을 모았다. 국회의원은 중앙에 올라가 정치,의정활동만하고 지역구관리는 중앙당 사무처의 통제아래 지구당 사무국이 맡기로 한 것. 일부 정치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영국 정당들의 운영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이같은 2원조직에 대해 당시 핵심 주체들은 국회의원과 사무국의 업무 분담과 지구당관리의 능률을 내세웠으나 실제속셈은 적극적인 상시지역구 관리로 공화당의 장기집권을 도모하는 한편 소속의원들을 완전 장악·통제하려는데 있었다.

2원조직제는 다른 주체세력 및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환골탈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구 민정당을 거쳐 오늘의 민자당에도 일부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당초 영국 정당들이 2원조직을 채택,선거 때만이 아니라 지역구를 상시관리하는 것은 내각책임제이기에 수시로 국회가 해산되어 치르는 선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며 사무국은 최소한의 경비로 운영되고 대부분의 요원들은 장래 정치지망생 내지 지지자들로서 자원봉사인 것이다.

장기집권을 위해 도입한 공화당은 전국의 지구당 사무국을 운영하느라 막대한 경비가 필요했고 결국 검은돈 조달과 관련하여 정치부패와비리를 가중시키고 말았다.

지난주 김영삼대통령이 민자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에게 「돈안드는 선거」 「깨끗한 정치」를 위해 영국형 선거제도를 강조하면서 영국의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도 17세기이래 2백여년간은 부정선거와 정치부패로 명성(?)을 날렸다. 결국 19세기 후반 숱한 시행착오끝에 몇차례 선거법 개정과 「부패 및 불법행위 방지법」을 제정하면서 오늘과 같은 깨끗한 돈안드는 선거제도의 기반을 굳힌 것이다.

영국의 제도가 저렴한 비용으로 공정한 선거를 보장해주고 있는데는 중요한 몇가지 장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첫째 각급 선거관리를 규정한 단일선거법인 국민대표법과 부패 및 불법행위 방지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점이다. 후보자 묵인하에 유권자에 대해 매수하고 향응을 베풀거나 협박했을 경우 후보자격의 실격 또는 당선무효는 물론 일정기간 출마자격을 박탈하는 한편 후보가 부담하는 최소한의 법정운동 경비를 초과 사용했을 경우 등도 당선 무효조치토록 하고 있다. 둘째 대부분의 선거운동원들은 무보수에 의한 자원봉사자로서 깨끗한 선거운동을 편다는 것이다. 셋째 유권자들이 높은 주권의식하에 탈법과 금품살포를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넷째 국회의원은 특권의 지위가 아닌 철저한 심부름역­봉사하는 자리여서 우리처럼 사생결단식의 선거운동을 펴지 않는 점이다. 끝으로 내각책임제여서 흔히 2∼3년에 한차례씩 국회를 해산,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권력의 순환이 원활한 점 등이 그것이다.

우리 국회가 5공시대 이래 적용하고 있는 하오 2시 개회는 영국제도를 껍데기만 모방한 대표적 사례다. 영국 의원들은 대다수가 겸직을 하고 있어 상오에는 개인업무를 보고 하오 2시반부터 국회활동에 참여한다. 그래서 영국 국회는 야간회의가 잦다. 이를 맹목적으로 도입한 우리의 경우 금싸라기같은 상오시간은 그대로 허비한채 의원들이 식후 피곤한 몸으로 하오국회에 나가는 것은 난센스요 국력낭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식의 선거제도가 이 땅에 어느 정도나마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와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금융실명제가 완전히 정착,생활화되어 단 한푼의 검은돈도 선거에 투입되지 못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 둘째 선거운동범위는 크게 완화하되 금품살포 매수 향응 선심관광 흑색선전 등 탈법행위는 가차없이 엄벌하고 후보자는 10년 이상 또는 영구히 출마자격을 박탈하도록 선거법을 고치는 한편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대 대통령이 선거 때면 『당선된 후라도 실격시키겠다』고 했다가 선거만 끝나면 흐지부지하는 태도는 두번 다시 되풀이 말아야 한다. 셋째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회수,진정한 심부름꾼이 되도록 하며 특히 지역구문제는 지방의원이 맡고 오직 군사만을 다루게 해야 한다. 끝으로 국민들 스스로가 손을 내밀지도 또 주는 것을 받지도 않도록 확고한 주권의식을 지닐 수 있도록 대대적인 계몽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제는 기막힌 제도만을 무작정 달랑 도입해서 몇년 사이에 사과가 결실되기를 기대하는 우는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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