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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그물」 점검 시급/금융기관·큰손 결탁 거액인출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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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그물」 점검 시급/금융기관·큰손 결탁 거액인출 잇달아

입력
1993.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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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금융위축 올까 감독 느슨/신종 빼돌리기수법 속출우려실명제의 주요 타깃인 거액 가명예금(큰손)의 불법인출로 실명제 자체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격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제도상으로 큰손이 달아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놓지 않았는데 일선에서 제도를 운영하는 금융기관과 큰손의 결탁으로 「큰손 빼돌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동아투금이 날짜를 6월로 소급해 8억5천만원의 CD(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있는 가명통장을 실명으로 전환하는 전산조작을 했고 항도투금은 마찬가지 방식으로 날짜를 12일로 소급,5천7백만원짜리 가명의 CMA(어음관리계좌) 통장을 실명전환했다. 이들이 전산조작을 한 날짜는 모두 실명제가 발표된 다음날인 13일이다. 금융기관들이 전산검색 등 정부 감시감독의 손길이 본격적으로 미치기 전에 큰손들의 요청에 따라 서둘러 거액의 가·차명자금을 도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동아나 항도 모두 부산과 관련이 있는 단자사들이다.

큰손들이 이리저리 도망가고 나면 실명제의 도입취지가 무색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사전적인 감시감독은 지나치게 느슨하고 물리적으로 한계도 있다. 전산조작 등 불법에 대해 경실련 등의 제보에 의존하는 정도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불법조작에 대해 사후에라도 일벌백계 차원에서 「중대조치」의 칼을 빼들었으나 실명제로 불안한 금융상황을 이유로 이나마 한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번째 위법사례로 적발된 동아투금의 경우 초기엔 인가취소 등이 검토됐으나 CD중개업무를 3개월간 정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연간 CD수수료가 6억원이므로 그에 따른 불이익이 대략 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대신 관련자와 책임자에 대해 형사고발 등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사후적 응징은 적발되거나 드러나는 불법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에 더욱 교묘한 큰손 빼돌리기가 새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조작가능성은 금융기관 별로 차이가 많다. 점포망이 많고 본점이 따로 있는 은행 증권의 일선창구는 전산조작이 거의 불가능한 반면 단자 신용금고 등 단일점포(많아야 2개) 금융기관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아직 전산화가 미비,손으로 작업하는 신협 새마을금고 등은 방비상태가 더욱 허술하다.

금융기관 전문가들은 가명계좌의 조작인출에 대해 대응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아직 전산화의 미비로 5천만원 이상의 가명계좌의 명단을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각 금융기관별로는 기록산출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단자사의 경우 전국 24개사를 통틀어 가명계좌의 수가 4백12개로 최근 집계돼 있다. 이들에 대해 명단을 확보해뒀다가 나중에 일일이 검사를 해보면 위법 여부가 드러나게 된다. 조작에 대비해서는 결산기일인 6월이전으로까지는 날짜를 소급조작할 수 없으므로 6월말 가명명단과 비교하면 된다. 금융기관을 통틀어 이같은 가명계좌의 규모는 많아야 3만명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나중에라도 일차적으로 1억원,또는 5억원 이상의 계좌를 추적한다면 조사대상이 크게 축소돼 실효성 있는 조사가 가능하므로 조작인출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각 금융기관에 대해 일정액 이상의 금융자산 이동을 업무감독 차원에서 조사하는 것도 거론되고 있으나 재무부는 금융위축을 우려,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무부도 이러한 거액 큰손의 실명제 포위망 탈출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게 기본적인 입장이어서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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