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 신권위주의」 필요악 인식/“달러가 최고선” 배금사상 만연/인텔리 빈민전락 목소리 상실/빈부·세대차 심화로 집단주의 전통 무너져20일 하오(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러시아 국민들은 2년전의 푸치(쿠데타)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민족구국전선을 중심으로 한 친공산주의그룹은 91년 여름 상황에서 푸치는 어쩔 수 없었으며 지금이라도 소련을 다시 재건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러시아 등 급진개혁파들은 공산주의가 소련을 파멸시켰으며 민주세력이 푸치를 저지해서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강조한다.
양측은 이러한 신념아래 벨르이 돔앞에서 각각 수만명을 동원,쿠데타 찬반시위를 벌일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러시아를 휩쓸고 있는 과도기적 양상은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극단주의 및 개인주의 이기주의 경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모스크바의 교통상황을 보면 극단적인 이기주의 성향을 실감할 수 있다.
차선조차 없는 대로에서 운전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아 차가 뒤엉키기 일쑤이고 교통체증과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올 상반기중 러시아에서 자동차사고로 숨진 사람은 1만4천여명으로 타유럽국가에 비해 6∼8배나 높다.
또 쿠데타이후 급격한 생활수준 저하로 배금주의사상이 만연,심각한 부작용을 낳고있다.
공무원들은 으레 「뒷돈」을 받고 일을 처리해주며 상거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기 어려울 정도다.
단돈 2백∼3백달러에 사람을 죽이는 청부업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여년간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공산주의는 하루 아침에 「악」으로 변했으며 시장경제체제는 「돈」을 최상의 선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에까지 이같은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빈부와 세대간의 차이는 집단주의적 전통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있다.
러시아는 과거 농업사회에서 형성된 상부상조의 협동정신을 유지해왔다.
비록 공산주의가 이를 왜곡시키기는 했으나 그 근본을 송두리째 뿌리뽑지는 못했다. 하지만 과도기적 진통이 계속됨에 따라 새로운 교육체제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서방의 나쁜 관습이나 가치관이 무차별적으로 수입되고 있다.
공산체제가 몸에 밴 구세대와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신세대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외화 상점이나 주유소 등에 가보면 「말렌키 비즈니스맨」(꼬마장사꾼)이 앞을 다투어 각종 물건을 팔려고 몰려온다.
이들에게는 「돌로르」(러시어로 달러)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고있다.
교수 의사 문학가 음악가 등 과거 국가의 보조를 받던 러시아의 인텔리겐차들이 「박봉」으로 졸지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함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해가고 있다.
모스크바국립대학의 학생들에게 장차 희망하는 직업을 물으면 90%는 「비즈니스」라고 대답한다.
인종차별이 거의 없던 다민족국가 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에서 최근 대두되는 문제점의 하나로 민족주의를 들 수 있다.
러시아인들도 살기 어려운 판에 아제르바이잔인이나 체첸인들이 러시아 땅에서 잘 살고있다는 사실이 민족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같은 과도기를 청산키 위해서는 「권위주의」가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차르와 스탈린식의 권위주의는 아니더라도 정통성과 도덕성을 갖춘 힘있는 지도자의 엄격한 국가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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