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열사 박물관이 한 교포사업가에 의해 순국 현지인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다. 이 박물관은 이준열사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보호조약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자결할 당시의 숙소를 매입해 조성되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순국 당시 호텔건물 매입/교포 이기항씨 헌신… 연내 개조 성지화
박물관 조성은 지난 2월 암스테르담에 사재를 털어 「이준아카데미」를 설립한 현지교민 이기항씨(57)의 집념으로 이루어졌다. 일시 귀국한 이씨에 의하면 이준열사가 망국의 한을 안고 순국한 곳은 헤이그 시내 중심가인 와건스트라트(거리) 124번지에 있는 「드용」이라는 이름의 호텔. 이씨는 2년전 순국 당시의 기록을 찾기 위해 현지 신문 등을 뒤지다가 이 열사가 숨을 거둔 장소를 확인하고 즉시 차를 몰아 달렸다. 콘크리트 3층 건물로 1층에 대형 당구장,2층과 3층은 현지 청년들이 불법체류하는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구장이 60년간 운영돼왔고 2,3층도 거의 수리를 하지 않아 건물 자체는 예전모습 그대로라더군요. 건물주는 개인이 아니라 헤이그시였습니다』
이씨는 즉시 매입에 나섰다. 시청을 구석구석 돌았지만 담당부서가 애매해 시간만 지연되자 이씨는 헤이그시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2개월만에 「적극 지원」 약속을 얻었다.
이준열사가 순국한 날인 지난달 14일 이씨는 드디어 헤이그시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상의 박물관 명칭은 「이준열사 기념 평화박물관」.
이 과정에서 가장 고심한 것은 비밀유지. 네덜란드에는 7천여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어 예상치 못한 장애가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 우리 대사관에도 계약 체결후에야 알렸다.
지난 6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네덜란드에 간 이씨는 중소의류무역회사를 경영하며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다. 그가 이준열사 기념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88년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성동교회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하면서부터.
이씨는 3년여의 준비끝에 91년 현지에선 처음으로 대대적 이준열사 추념식을 가졌다. 지난달 31일 5백여 교민이 참석한 가운데 두번째 추념식을 가진 이씨는 이 열사의 숙소앞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 열사가 만국회의 참석에 앞서 대한제국의 대표라며 태극기를 꽂은지 86년만이었다.
이씨는 올해안에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조,유럽지역 유일의 독립운동 성지로 만들고 현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이 열사와 만국평화회의에 관한 기록문서 사본,유품도 전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엄청난 비용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사재를 털어 건물은 구입했지만 개조비용은 당장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열사는 헤이그시내의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사후 56년만인 63년 유해가 본국으로 봉환돼 그해 10월4일 수유동에 묘소가 조성됐고 77년에 외무부 주관으로 헤이그 묘적지의 확장·정화작업이 실시됐다.
이씨는 『이 열사를 기리는 박물관은 한국일들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이준열사를 위대한 한국인이자 양심적인 세계인으로 기억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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