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등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돈흐름 투명… 「정치의존」 안통해/능력없는 총수는 퇴진 불가피금융실명제는 재벌그룹 등 기업경영 전반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변화는 실제 경영능력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룹경영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재벌총수의 그룹내 지위와 권위가 눈에 띄게 약화되는 대신 전문경영인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경영능력이 부족한 그룹총수의 경영일선 퇴진은 이제 시간문제가 된 것이다.
또 「가명의 베일」에 싸여 있는 경리장부,주식 위장분산 등 기업의 각종 회계처리가 투명해질 수 밖에 없다. 모든 재벌그룹의 매출액이 이익금 주식이동 등 재무상황이 국세청 전산망에 포착되기 때문이다.
재벌총수 가운데 경영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정경유착에 의한 로비력과 비자금 살포력으로 그룹 최고경영자로서 자리를 지켜온게 사실이다. 앞으로는 정경유착이 차단되고 비자금 조성이 불가능해져 재벌총수의 진짜 경영능력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6공 때까지만해도 대부분의 재벌총수들이 청와대 등 권력기관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주고 대형사업을 수주,어느 전문경영인도 할 수 없는 일을 함으로써 그룹내에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누릴 수 있었다』며 『이제는 이같은 사업수주를 정상적인 룰에 의해 할 수 밖에 없어 총수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업무를 담당할 전문경영인들의 기능이 한층 강화되게 됐다』고 말했다. 재벌 총수들은 기업자금을 빼내 조성한 거액의 비자금을 정치권 등 요소 요소에 뿌리는 식으로 정경유착에 필요한 인맥을 형성·유지하고 기업경영에 필요한 고급정보를 입수하고 있다. 특히 뜻하지 않은 경영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도 정치권 등 권력기관에 「돈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위기관리를 해온게 우리의 현실이다. 재벌총수의 경영능력이 로비와 비자금에 의해 과대포장되어 있었고 실명제로 이 껍데기가 벗겨지게 된 것이다.
김의형회계사(삼일회계법인이 이사)는 『재벌총수가 정경유착이 고리를 이용하여 그룹의 주요 경영현안을 처리하는 전근대적 위기관리체제가 사라질 것』이라며 『앞으로는 경영기획 능력을 소지한 양질의 전문경영인을 어느 정도 확보·활용하느냐가 그룹경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영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재벌총수는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막후에서 인사권이나 행사하고 배당이익을 향유하는데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업계에서는 「주머니돈(기업돈)이 쌈짓돈(기업주돈)」이라는 비정상적 회계처리가 관행화되어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이 이중장부를 갖고 있는 등 회계처리를 규정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급 재벌그룹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정은 비슷하다. 비자금조성,대주주 가지급금 지출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제는 기업돈과 기업주의 돈이 회계상으로 구분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자금관리 방식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금흐름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의 자금담당자들이 사채시장에 기웃거리는 악습이 사라지게 됐다. 거액의 급전을 조달할 수 있는 사채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성환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프로젝트 수주 자금운용 인사관리 등 기업경영 전반에 걸친 경영관행이 완전히 바뀌어 종전의 편법·탈법적인 행태가 점차 정상화되어 갈 것』이라며 『실명제는 책임경영체제를 앞당겨 재벌그룹 계열사의 독립경영을 가속화시키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촉진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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