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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보다 제도정착을 우선하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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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보다 제도정착을 우선하라(사설)

입력
1993.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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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패,부작용 최소화에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충격과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크게 가시화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급격히 높아가고 있다. 실물경제의 얼굴인 서울 여의도 증권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가 연이틀에 걸쳐 대폭락했다. 주식은 거의 전업종이 하한가로 폭락세를 보였다. 금융실명제 실시 2일째인 14일 정부의 지시에 따라 투신·보험·은행 등 기관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섰으나 쏟아지는 매물홍수를 막지 못했다. 또한 채권시장은 「사자」와 「팔자」가 모두 실종,이틀째 거래가 형성되지 못했다.

한편 규모의 영세성,신용도의 저조 등으로 은행·단자회사 등 제1,2금융권의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형편이 되지 못한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그들의 자금 공급원인 사채시장이 자취를 감춤에 따라 매우 당황하고 있다. 잘못하는 경우 무더기 부도사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사실 예측했던 것이나 그 파문이 예상보다 격렬한 것이 불안을 더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당황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태를 냉철히 합리적으로 분석,신속하게 설득력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다행히 김영삼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김 대통령은 14일 전국무위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내각은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제도인 만큼 단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한다.

우리도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금융실명제 실시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여러가지 부작용들의 최소화』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부가 우선 금융실명제 실시의 방향과 목표를 극명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의 정부방침은 두가지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차명·가명 등 비실명 계좌를 실명화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정금액 이상의 비실명 금융자산(현행 최고 5천만원)에 대해서는 자금출처를 조사,세금누락이 발견되는 경우 추징하겠다는 것이다. 즉 실명화와 증세를 다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정부안이 옳다. 그러나 부작용을 극소화하려면 신축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부가 금융실명제의 제도정착에 우선 역점을 두고 세수추징은 그 다음의 과제로 우선 순위의 차등을 두었으면 한다.

○출처조사 신축성있게

「얼굴없는 돈」이 가장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은 자금출처 조사다. 과거의 비실명에 의한 세금포탈은 분배정의 차원에서 묵과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실명을 불문에 붙인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수용할 수 없다. 그러나 실명화에의 저항이나 또는 실명화로부터의 도피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자금출처대상 한도액을 높여 대상을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현재 자금출처 대상이 되고 있는 「검은 돈」을 영종도 신공항사업이나 또는 경부고속철도 같은 국가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동원하는 것도 구상해볼 수 있다.

이들 사업을 위한 장기저리의 채권을 발행하고 이 「얼굴없는 돈」이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는 경우 자금출처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실명제의 원칙을 다소 훼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실명제가 처음 실시되는 현 시점에서는 이러한 과도기적인 면죄장치도 거론해볼 수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5천만원 이상의 실명화 비금융자산에 대한 자금출처조사가 강행되면 주식뿐 아니라 채권시장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회사채 발행과 유통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회사채 발행규모는 연간 17조원인데 기업들은 이제는 회사채 발행의 경우 새로운 자금소요뿐 아니라 이미 도래하고 있는 기발행 회사채의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환발행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재무부 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5천만원 이상의 자금출처 조사대상자는 약 3만계좌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자본시장을 등지는 경우 기업들의 채권발행은 동면하게 된다. 직접 금융이 이처럼 극도로 위축되는 경우 은행 등 간접 금융기관이 부족자금을 메워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자금출처 조사한도를 적어도 소액주주 상한선인 「3억원 상당」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제안이 집단이기주의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를 경청,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본시장에 못지않게 충격이 큰 것은 중소기업 및 영세기업자들이다. 이들의 자금원인 사채시장의 퇴출에 따라 적어도 대체자금원을 마련해줘야 한다. 정부는 신용보증기금의 융자재원을 3천억원 긴급 증액했으나 중소기업체들이나 관련 금융기관은 융자 지침을 전달받았거나 마련한 것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중기지원 종합대책을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대출자금이 할당된다해도 관계금융기관들은 담보를 요구하고 또한 신용대출의 경우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대다수의 업체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주장,정부측이 특별자금 지원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한 중소기업들의 부도증대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과 개인 영세기업(약 2백30만사업자)들은 대다수가 자료없이 거래해왔는데 실명제 실시에 따라 이들의 포착세원이 증대할 것이 분명하므로 세율인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떻든 실명제 실시에 따른 중소기업자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편 정부가 실명제 실시 발표이후 취한 부동산투기 억제·해외자금 도피억제 강화 등의 조처는 시의적절하다 하겠으나 엄격한 이행이 뒤따라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부동산투기는 일단 불붙으면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예방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임시국회가 16일부터 20일까지 대통령의 긴급명령 승인요청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대책을 논의할 것이므로 이 기회를 이용,현안의 타결 등 국민적 총회를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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