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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외교」/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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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외교」/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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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문민정부가 부활,출범한 이후 많은 국민들은 한국 외교가 장차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모아져왔다. 더구나 외교총수에 역대 외무장관중 처음으로 학자출신의 한승주장관이 발탁되어 그가 펼칠 「외교방향」과 「외무부의 변화·개혁」이 궁금했던 것이다.한 장관은 정부 출범 3개월후인 지난 5월말 한국외교협회 초청연설에서 신외교의 5대 기조로 세계화,다변화,다원화 및 지역협력과 미래지향을 들었다.

이는 한 장관이 학계시절 강조해온 것으로서 문제는 이같은 기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천,구체화하는가에 신외교의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외무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외자세와 행태는 국민을 곤혼스럽게 하고 있다. 하나는 얼마전 미국과 북한간의 2단계 회담에 대한 태도이다. 당초 미국은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과 남북한간의 상호 사찰을 수용하고 끝내 핵개발 포기에 대한 다짐을 받겠다고 쐐기를 박았으나 회담결과 북한은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IAEA와 중단됐던 사찰문제를 재협의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중수로형 원자로를 경수로형으로 바꾸는데 지원을 받는 것으로 매듭되었다.

남북회담 재개나 IAEA의 사찰도 대미 회담을 원활하게 하려는 전략임은 쉽게 알 수 있고 이는 그들의 회담 제의거부와 형식적인 IAEA 사찰이 그대로 증명했던 것. 그런 2단계 회담결과에 미 행정부안에서도 실패라고 반발했는데도 유독 우리 외무부만 「중대한 진전」이라고 높이 평가,환영했다. 쓸데없이 헛박수만 친 관객역을 해낸 것이다.

예상대로 북한이 우리의 대화재개 제의를 일축하자 그제서야 한 장관이 『지금까지는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피에 유화적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했으나 이제는 강한 대북전략을 구사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또 하나는 지난주 일본의 미야자와(궁택) 내각이 물러나기 전에 행한 한일간의 최대 현안인 종군위안부 관계발표에 대한 외무부의 태도이다. 물론 이번 발표는 지금까지 「정부는 모른다」 「책임없다」며 발뺌한 것과는 달리 강제연행했다고 시인하고 피해자에 대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보인 것 등은 전향적 자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는 슬쩍 빠진채 『구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고 모집·이송관리에는 총체적으로 강제성이 있었다』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업주가 관여했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위안부는 과거 군국주의 일 정부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국 등 식민지의 젊은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한 반인권적인 만행임은 공식문건과 증언들로 증명되고 있다. 이런데도 일정부는 빠진채 군과 업자에게 넘기고 또 관계자료와 또 징발숫자도 밝히지 않고 있음은 여전히 책임회피가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표를 두고 한 장관과 외무부 당국은 『전체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반성의 뜻과 함께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것을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숫자 등 추가조사를 기대한다』고 긍정·환영의 뜻을 표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유모 아주국장이 『더이상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의 외교현안으로 삼지 않겠다』고 못박은 것이다.

이제 거대한 빙산에 대한 첫 부분적 시인이고 앞으로 진실규명을 기다려야 하는데 무엇이 그토록 성급하고 무슨 속사정이 있기에 이렇게 서둘러 쐐기를 박는가. 이런 것이 「한승주외교」 「신외교」의 스타일이고 구체적 내용인가.

아쉬움은 그것뿐이 아니다. 이번 박은식선생 등 임정요인 다섯분의 유해를 환국,안장할 때 외무부는 당연히 장관이름으로 성명을 내어 왜 그분들이 국권을 빼앗긴뒤 망명하고 임정을 세우고 신고속에 이역서 눈을 감았는지를 비통한 역사적 사실을 내외에 준엄하게 일깨웠어야 했다.

오늘날 외무부는 세계 1백74개국과 수교하고 서울에 80여개의 상주 공관이 있으며 해외에 1백여개 공관을 운영하는 1천수백여명의 대기구로 규모면에서 가히 선진국형이다. 그러나 엄청난 종합상사 규모의 기구와 인력을 갖고 중소기업 수준과 질의 외교를 구사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들이 기대할 수 있는 국가발전 철학과 원칙과 정신이 담긴 외교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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