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절 「외양 치중」과공 일소/본질 중시 「문민 의전상」 마음껏 펼쳐/외빈 몰려 순위조정 고심 “즐거운 비명”청와대에서 유일하게 「수석」자가 붙지 않았지만 수석비서관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모든 공식일정을 챙기는 김석우 의전비서관이다.
외무부 아주국장이자 촉망받는 외교관으로 일하던 그는 김영삼대통령에 의해 직접 발탁돼 청와대에 들어온 케이스.
김 대통령이 야당인 통일민주당 총재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88년 주일 대사관의 영접지원팀장을 맡으면서 김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수석」 직함은 외무부내의 서열을 의식한 그가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외무부시절 합리적이면서도 깐깐한 업무처리로 유명했던 김 비서관은 요즘 청와대 근무가 더없이 즐겁다. 정무부문,특히 일본통으로 경력을 쌓아온 그가 다소 생소한 분야인 의전업무에 이처럼 만족을 느끼는 것을 문민정부의 속성과 무관치 않다.
과거 정권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생적 권위」가 문민정부에서는 스스로 우러나온다는 사실이 김 비서관의 일할 맛을 돋우는 것이다. 구태여 권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과대 포장된 의전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의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외교관으로서 평소 의전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그는 지금 한껏 펼치고 있다. 즉 절차가 본질을 구속해선 안된다는 그 나름대로의 기본원칙을 청와대 의전에 적용하는 중이다.
김 비서관은 그래서 「물 흐르는듯한」 의전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다. 소리없는 의전,순리에 맞는 의전을 개혁시대 청와대의 또다른 모습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김 비서관의 이런 생각은 새정부들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 의전 간소화속에 구체화되고 있다. 외국에서 국가원수급 귀빈이 내한하더라도 총리가 공항에 나가지 않고 대신 외무장관이 출영하는 것이나 각종 호화행사를 폐지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해외근무를 통해 외국의 의전관행을 직접 체험했던 김 비서관은 그동안의 우리 의전이 권위주의를 넘어 과공의 수준까지 갔었다고 지적한다. 역시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이 갖는 한계일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과거 외국손님의 유치에 발벗고 나서야 했던 외교관들의 씁쓸한 기억을 안고 있는 김 비서관은 요즘 몰려드는 외빈들의 우선 순위를 정리하느라 고민스럽고,그래서 청와대 일에 더욱 재미를 느낀다.
『대통령옆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선택받은 것 아닙니까. 특히 지금같은 문민정부에서요. 따라서 다른 업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의욕에 차서 일할 수 있습니다』
외교관시절부터 말을 아끼는데다 청와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는 김 비서관은 청와대 근무의 감회를 묻는 질문엔 이처럼 분명하게 소감을 밝혔다.
김 비서관은 직전 정권,즉 노태우대통령 때의 의전 수석비서관들에 비하면 거의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수석」이라는 직함도 없고 상도동 가신출신들이 일정부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그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러면서도 완벽한 업무처리가 오랜 외교관생활에서 몸에 익힌 그의 일하는 방식이다.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온 김 비서관은 외무고시 1기 출신으로 비교적 탄탄한 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주일 정무참사관 시절 북방외교의 숨은 공로자였으며 지일파이면서도 대일정책에 있어선 민족적 자존심에 비중을 두던 강경파였다. 특히 동료·후배 외교관들과의 인화를 위해 외무부내에서 농구모임을 주도하기도 해 외무장관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김 비서관은 이제 외무부로 돌아가기 보다는 청와대에서 5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문민시대에는 청와대 근무가 더이상 프리미엄이 될 수 없음을 그 스스로 느끼는듯 하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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