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참의원 「여소야대」 주역/타협 싫어하는 강직한 성품일본 최초의 여성 중의원 의장으로 5일 선출될 것이 확실한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전 사회당 위원장은 야당 총재를 지낸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정치가이다.
호소카와(세천) 연정출범이 확실해진 이후 거론된 국회 및 내각요인 인선과정에서 도이 의원이 의장후보로 강력히 추대된 것은 연정 추진세력들이 연정을 이탈할지도 모르는 사회당 좌파에 대한 차단막을 친 것이었다.
또한 일본 의회사상 최초의 여성 중의원 의장을 탄생시켜 연정의 새로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회당 좌파와 호헌세력들은 부패의 상징인 자민당 구 다케시타파의 후신인 신생당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다 이번에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조건으로 한 연립정권에 참여할 경우 다음번 총선에서 존립기반을 잃게 된다며 당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려왔다. 이들의 최고리더가 도이 전 위원장이다.
도이 의원이 현행 평화헌법의 철저한 호헌파가 된 것은 도시샤(동지사)대학 법학부의 헌법학 강사출신이라는 전력과 관련이 깊다.
69년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된 이후 9선인 도이는 당부위원장을 거쳐 86년 중참의원 동시선거에서 참패한 사회당 최후의 보루로서 위원장에 취임했다. 일본 정치사상 최초의 여성 정당대표였다.
도이 위원장은 89년 7월 참의원선거에서 소비세·리쿠르트사건 등 자민당의 실정을 맹공,사회당의 대약진과 그에 따른 여야당 역전에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90년 중의원선거에서는 사회당 여성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킨 「마돈나 선풍」으로 사회당 의석을 크게 늘렸으나 91년 통일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이 대패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에서 물러난후 중의원 외무위원회 이사로서 지난해 PKO법 파동때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위헌」이라고 자민당을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사회당 위원장 재직시 타협을 싫어하는 당운영과 국회 전술로 「정계의 논리를 모르는 것이 장점」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 강직한 성격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도이 중의원 의장이 국회개혁·정치부패 시정·침략전쟁 사과 등 평소의 소신을 펼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7·18 총선에서는 자신의 아성인 효고(병고)현 주에서 복병으로 등장한 일본신당의 고이케 유리코(소지백합자) 후보와 「신구 마돈나 대결」을 펼쳤으나 당당히 1위로 당선,탄탄한 지역기반을 과시했다.
취미는 슬롯머신,가라오케,피아노연주. 「마이웨이」가 애창곡이다. 독신이며 64세.<도쿄=안순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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