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5공시절 인권운동 구심점 역할/문민시대 맞아 민간 통일 대화창구로/재야·학생등 매주 100여명 열띤 토론유신과 5공시절 한국인권운동의 중심이었던 목요기도회가 문민정부 출범후 통일사랑방으로 탈바꿈했다.
매주 목요일 교회와 재야의 지도자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인권문제를 고발,폭로하고 강압통치에 저항했던 목요기도회가 통일운동을 민간차원으로 대중화하는 모임으로 바뀐 것이다.
목요기도회가 처음 열린 것은 유신의 서슬퍼런 긴급조치 제4,5호로 재야운동권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74년 5월. 민청학련사건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이 대거 구속된 뒤였다.
집회가 전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탄압을 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재야의 모임이었다.
당시 수도교회 담임목사로 목요기도회를 줄곧 지켜봤던 김상근목사(54)는 『목요기도회는 재야지도자들이 안부를 확인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유일한 창구였다』고 말했다.
김대중 예춘호 계훈제 문익환 박형규씨 등이 단골참석자였고 제도권내에 있었던 김영삼대통령도 큰행사때 참석하곤 했었다.
5공하에서도 광주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고 김대중씨 구명운동,직선제 개헌운동을 주도하는 등 여러 시국사건이 목요기도회를 통해 쟁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목요기도회는 더 이상 반정부적인 모임이 아니다. 지난 5월 마지막 목요일 목요기도회는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목요예배」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희년기도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88년 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한 분단 50년째인 95년까지 우리 사회를 분단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자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희년은 구약시대때 50년마다 돌아왔던 「해방의 해」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리는 목요기도회는 30분동안의 제1부 희년기도회와 1시간30분간의 제2부 통일 사랑방대화로 나뉘어 열린다.
기도회는 기도와 명상,설교로 진행되지만 통일사랑방은 통일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누구든 발언할 수 있는 자리이다.
지난 6월에는 「교회의 통일운동이 하나됨을 위하여」,7월엔 「민간통일운동의 진로와 방향」이 주제였고 8월주제는 「통일을 앞당기는 삶」으로 정했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장윤재간사(32)는 『교회와 재야지도자들뿐만 아니라 60대 실향민,노동운동가,통일문제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등이 많이 참가한다』며 『매주 80∼1백여명이 항상 자리를 메운다』고 말했다.<남경욱기자>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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