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임금·땅값 “만성적 3고”/“모래주머니 차고 달리는 격” 업계한탄/불투명한 경기도 발목잡아우리 경제는 기본적으로 투자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생산이 일어날 수 없는 투자의 불모지대 처럼 돼 있다. 토지·자본·노동은 흔히 말하는 생산의 3대 요소. 생산의 기초가 되는 이 요소 비용이 만성적으로 세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금리도 세계 최고수준,땅값도 세계최고 수준,인건비도 경쟁국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상표도 없고 다른 나라들을 누를 만한 기술도 없고 마케팅능력도 없고 게다가 생산의 기본적 요소가 되는 토지·자본·노동의 비용은 최고수준으로 비싸니 이런 상황에서 누가 무슨 마음을 먹고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28일 전경련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인들은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로 국내외 수요 부진,과다한 금융비용 부담 및 자금조달상의 어려움,임금상승,땅값 상승과 이에 따른 공장부지 구입난 등을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가장 큰 투자애로 요인은 투자비용 문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시장금리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는 우리가 7.2%로 미국(1.4%) 일본(2.5%)의 3∼5배,대만(4.8%)의 2배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산업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전산업의 설비투자 계획규모는 28조원. 이를 전부 국내에서 조달한다면 실질 이자 부담액은 2조원대. 그러나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는 7천억원만 내면된다. 우리 기업은 기업의 건실도나 신용도와는 상관없이 단지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앉아서 일본 기업보다 3배나 많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형편인 것이다.
D그룹 K전무는 이를 두고 『우리 기업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육상선수격』이라고 말했다. 맨 몸으로 달려도 뒤질판인데 고금리라는 부담마저 안고 뛰니 승부는 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내 고금리가 쉽게 해결될 전망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값싼 외국 돈을 빌려 쓸 수 있도록 기업들의 상업차관 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은 인건비와 땅값도 금리 못지않게 기업인을 지치게 하는 「모래주머니」가 되고 있다. 무역협회는 89∼92년간 우리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19.4%로 경쟁국인 대만(12.3%) 홍콩(12.6%) 싱가포르(10.6%)의 2배,일본(3.9%)의 5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제조업체 월평균 임금을 달러로 환산,1인당 GNP(국민총생산)로 나누어 비교해 본 임금 수준은 92면 기준으로 대만이 우리의 69% 수준이었고 홍콩(35%) 싱가포르(49%) 태국(48%)은 우리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전국 토지 가격도 88년 이후 91년까지 연평균 20% 이상씩 급등,오를만큼 올라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제조업 부가가치중 기업이 낸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8년 2.5%에서 지난해 3.6%로 크게 늘었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소장은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요소 가격의 3고현상외에 부족한 사회간접자본과 경쟁국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물류비용,기업 경상이익의 3분의 1에 달하는 준조세 부담 등도 투자비용을 끌어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와 생산을 해 내다 팔기까지 길목마다 돈드는 돈 드는 일만 널려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은 불투명한 국내외 경기전망으로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투자해봤자 물건 팔 자신이 서질 않는 것이다. 더구나 지독한 내수 부진에 수출둔화까지 겹쳐 현재도 기존 설비투자의 가동률이 80%에도 못미치고 재고처리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다.
한마디로 투자비용은 늘고 예상 수익은 적어 투자를 해도 이문이 남을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설상가상격으로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신정부들어 돌변했다. 대형 투자를 하면 종전에는 은행에서 돈 대주고 독과점으로 판로를 손쉽게 확보하고 정부는 인허가상의 특혜 등 반대급부도 주었다. 심지어 장사가 잘 안돼 부실해지면 구제금융까지 주어졌으나 신정부 들어서는 이런 「정경유착형 기업경영」이 불가능하게 됐다. 오로지 사업성에 따라 투자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경제논리만이 남았다. 또 과거 인플레 개발시대에는 땅을 사들여 공장을 세우면 기업해서 남는게 없어도 앉아서 땅값 상승으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재미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한은 박재준 조사1부장은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고 이 상품이 잘 팔릴 전망이 서야 기업이 투자에 나서는 것인데 아직 이런 여건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부장은 『투자란 여건이 만들어지면 저절로 나타나는 경제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모래주머니」들을 없앨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이백규기자>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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