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행때도 「삐삐」 휴대… 긴장 연속/북한 핵관련 부처간 시각차 원만 조정/외국 정상·국빈등 방한준비에도 분주새벽 5시.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에겐 하루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눈을 뜨자마자 집근처의 산에 올라 30분가량 운동을 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교수시절부터 지녔던 오랜 습관이지만 이 시간이 특별히 즐거워진 것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의 일이다. 하루종일 긴장속에 있어야 하는 그로서는 아침운동시간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여유를 함께 찾는 귀중한 때이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정 수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때라해도 긴장을 풀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옆구리에 찬 「삐삐」가 그것을 말해준다.
최근의 어느 일요일.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역시 집근처의 산에 올랐던 정 수석은 다급하게 울리는 「삐삐」 소리에 산을 뛰어서 내려왔다. 함께 갔던 동료교수들에겐 미안했지만 인사도 제대로 못한채 집으로 향했다. 대통령의 긴급호출이었다.
김영삼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온지 5개월. 청와대 수석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정 수석은 정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는다.
새정부 출범이후 곧바로 터진 북한의 핵문제,클린턴 미 대통령 방한 등 굵직굵직한 정상회담,기본적으로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특수한 안보상황,여기에 시각이 서로 다른 통일 외무 국방 안기부의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갔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정 수석은 자신의 요즘 생활을 「7·11 스토아」 「10부제 인생」이라고 부른다. 7시에 출근해 11시에 퇴근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시간의 단락을 승용차 10부제 덕분에 10일 단위로 느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가 대학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정 수석의 업무는 사정 등 국내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개혁정국에 가려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외교나 안보 남북관계 등이 모두 비밀을 중요시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 수석의 역할은 개혁을 포함한 국내부문의 어떤 업무 못지않게 중요하다. 외교안보 분야를 조정하는 일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의 판단을 돕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관련부처에선 정 수석에게 다소 불만스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시각차이가 있는 관계기관의 의견속에서 국가이익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자리이다.
북한 핵문제만 해도 통일원은 남북관계 개선의 시점에서,외무부는 미국을 포함한 전반적인 외교관계에서,국방부 및 안기부는 안보의 측면에서 자신들의 입장에 무게를 싣는다. 특히 통일 외무 안기부의 장이 모두 정 수석과 같은 학자출신이어서 까다로움은 더하다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렇지만 정 수석은 이들 「학자 4인방」중 가장 후배이면서도 특유의 원만한 대인관계와 업무처리 스타일로 조정자의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 수석의 이같은 「성공」이 그의 빠른 적응력과 현실감각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정 수석은 청와대에 들어오면서 즉시 길고 희게 센 머리를 짧게 깎은뒤 염색을 했다. 외모부터 공무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정 수석은 그러나 관료적이지는 않다. 외교안보수석실의 비서관 4명에게 그는 언제나 깍듯하다. 부하라기보다는 동료같이 대한다는게 주변의 얘기이다.
교수시절 「정치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정부의 정책자문기구 및 대학행정 등에 활발히 참여해온 그는 학자출신이 결여하기 쉬운 현실감각을 비교적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대통령이 외교 통일문제에 점차 큰 관심을 보임에 따라 정 수석은 새벽 5시의 개인시간마저 반납하게 될지도 모른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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