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부의 여러 각료중에서 고병우 건설부장관은 소신있는 각료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것 같다. 국토이용에 관한 숱한 규제들을 마구 풀어 헤치면서 고 장관이 수시로 피력하는 말들을 듣노라면 명쾌한 논리의 소유자 같기도 하고 꽤나 소신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소관업무가 국민적인 핫이슈로 등장해 장관의 치맛자락에까지 불길이 와닿을 지경인데도 말 한마디 없이 장관자리에 파묻혀있는 여성장관이 있고,설익은 논리로 기자들을 설득하다가 뜻대로 안된다해서 핏대를 올리고 눈물을 흘린 또 다른 여성장관도 있는가 하면,자기 부의 고유업무를 다른 장관들이 마구 넘겨보는데도 오불관언인 학자장관까지 있다보니 고병우 건설부장관을 비롯한 몇몇 소신파 장관들의 언행이 훨씬 돋보이게 마련인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장관의 정책 전개와 그것을 추진키 위한 소신과 언행이 기본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장기적인 이익과 부합되고,국가발전과 합일될 수 있는 것이라면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장관 개인의 한건주의나 자기과시 또는 돈키호테식의 과잉의욕 때문이라면 곤란하다.
우리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자자손손들이 영원히 같이 살아갈 국토의 보존과 이용의 중책을 맡고 있는 건설부장관의 경우는 순간의 실책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국토의 훼손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새 정부가 들어선후 고 장관이 이끄는 건설부가 전개하고 있는 건설정책들중에는 구 시대의 비민주적이고 관편의주의적인 것들을 민위주로 개선함으로써 환영받을만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고 장관이 발표했던 정책과 구상,그리고 정책의지들중에는 시행 불가능한 것도 있고 시대착오적인 것도 있으며 경제논리만을 앞세운 국토의 무분별한 훼손 위험성이 있는 것도 있다.
몇가지 사례를 보자. 고 장관은 6월초 한 대학에서 행한 「새로운 건설정책의 방향」이란 주제의 특강에서 『수도권 집중의 가장 큰요인인 교육인구 집중을 해결키위해 지방에 종합 캠퍼스타운을 건설하겠다』고 밝히고 이 종합대학촌에 신설대학을 명문대학으로 집중 육성하고 서울소재 대학의 이전도 촉진하겠다고 했다.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서 나온 구상이고 70년대에 이미 들었던 「흘러간 옛노래」 같은 소리다. 건설부장관이 대학부지만 잡아주고 대학을 유치하면 대학촌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순진하다고나 할까.
수도권 인구억제를 그렇게 강조하는 고 장관과 건설부가 수도권에 2∼3개의 신도시를 또 건설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린벨트 완화시책에도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다. 원주민의 생활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데 동의하지만 하는 행태로 미뤄본다면 그린벨트의 골격마저 파손시킬 것 같아 불안하다.
고 장관은 엊그제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가용 토지공급을 대폭 확대해 장기적으로는 땅값을 지금의 절반수준으로 하향 안정시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토지의 공급이 모자라 땅값이 올랐으니 공급을 대폭 늘리면 값은 떨어질게 아니냐는 경제논리에 바탕을 둔 구상인 모양이다. 경제관료 출신다운 구상이랄 수 있다. 하기야 우리 국토가 미국 땅덩어리만큼 크다면야 백번 옳은 생각일 수 있다. 그렇지못한 우리로서는 가용토지를 늘리려면 농지와 그린벨트를 전용하고 녹지도 훼손해 택지와 공장용지를 공급해야 한다. 그리해도 어느 시점에 가면 토지는 또 부족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때 값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한한 국토를 한시적인 한 장관이 특정목적만을 위해 마구잡이 개발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 더 많은 미개발의 국토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게 최대의 유산이고 최선의 미덕일는지도 모른다. 녹지훼손은 숨막히는 도시생활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키고 지구촌의 시대적 흐름인 환경보전 차원에도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고 장관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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