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상 다음으로 대통령 호출 잦아/수시 여론조사,결과 정책반영에 앞장/「정치개혁 제도화」 재임중 정착 혼신지난주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주돈식 정무수석이 웬 기계를 가지고 참석했다.
중앙선관위가 미국에서 도입,우리 실정에 맞게 시험제작한 동시선거용 투표기였다
주 수석은 기표용 붓두껍으로 컴퓨터 잉크를 묻혀 기표하면 개표를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이 투표기의 성능을 자세히 설명했다. 김영삼대통령에게도 이 기계를 가지고 가 보고했다고 한다.
주 수석의 일처리는 이처럼 매사가 꼼꼼하고 구체적이다.
수석회의에서 발언시간이 긴데는 관장업무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어떤 조그만 일이라도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 때문이다.
그런 반면 주 수석의 일처리 스타일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바람소리를 내지 않고 제스처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27년의 기자생활을 끝으로 청와대에 들어오면서 『대통령 참모로서의 비서는 얼굴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의 취임 1백일 기자회견 직후 각 수석들에게도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이때 일부에서는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해 책임있는 얘기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주 수석은 반대했다.
『비서는 있어야 할 때와 없어야 할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는 「비서관」에서였다.
새정부 출범후 개혁사정과 정책홍보에 밀려 주 수석의 정무분야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치만개 시절이라해서 주 수석이 전면에 부각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이런 주 수석을 김 대통령이 박관용 비서실장 다음으로 자주 찾는다는 것을 알면 놀랄 수 밖에 없다. 본관행이나 전화호출이 그만큼 잦다.
주 수석은 권영해 국방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19일 아침에도 본관에 급히 불려갔다. 김 대통령이 왜 찾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 수석은 청와대 근무자중 「청와대 체류시간」이 가장 긴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일 저녁 9시 TV뉴스를 보고 다음날 아침자 조간신문 가판을 모두 정독한뒤 사무실을 나선다. 저녁약속이 있으면 나갔다가 어김없이 다시 들어온다. 담당비서관들이 있지만 여기서도 모든 일을 꼼꼼히 챙기는 성격이 드러난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때가 많다. 한마디로 부지런하다. 본인은 『기자직업을 가지고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해가 떠있을 때 귀가한 적이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면서도 그는 주위에 호악의 감정을 좀체로 나타내지 않는다.
입이 무겁고 말을 아낀다. 그가 그야말로 어쩌다 미소라도 짓는 날은 대통령의 의중에 맞게 일이 잘 처리됐을 때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혼자서 골머리를 싸매고 씨름하는 일이 있다해도 주변에서 눈치채기가 어렵다. 그는 정무수석실의 관장업무중 통상 알려진 당정관계와 체제홍보외에 정책조사 기능에도 상당히 역점을 두고 있다. 여론조사에 관해서는 『무엇을 풀어야 알고자 하는게 나오는가』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일가견을 갖고 있다.
그 자신은 이를 『수치로 나오는 것도 중요하나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표현했다.
지금 주 수석 앞에 놓인 현안은 야당의 요구로 발동된 국정조사 활동의 범위와 춘천과 대구 동을의 보궐선거 등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앞으로 정말로 해내려고 하는 것은 김 대통령의 구상인 「정치개혁」의 제도화이다.
주 수석은 이를 분명히 했다. 당과의 원활한 협의를 통해 정치관계법 개정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무수석실 직원들에게 『우리가 여기있는 동안 한국정치를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게 하고 그 수준을 한단계 더 높이는 일을 해냈다는 것을 보람으로 간직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의 언행은 「정치적 실력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게 더 힘으로 작용할 경우가 많다.<최규식기자>최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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