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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은행도 예전처럼 못도와줄것…”/기업들 「비상금 쌓아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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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은행도 예전처럼 못도와줄것…”/기업들 「비상금 쌓아두기」

입력
1993.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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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증시등 통해 거액조달/즉시인출 가능 현금·반현금화/대부분 「재테크」용으로 떠돌아 자금시장 왜곡『난세에 믿을 수 있는건 돈밖에 없다. 「준비금」을 두둑히 마련하라』

새 정부 출범이후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필요할 때 즉각 꺼내 쓸 수 있는 거액의 준비금을 조성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이 돈을 조달해다가 투자는 하지 않고 즉각 인출이 가능한 현금 또는 반현금으로 쌓아놓고 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놓고 금융계에서는 기업들이 「돈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대형건설사인 (주)한양의 부도이후 재계에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대기업들까지 거액의 자금을 경쟁적으로 조달,비축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곧바로 현찰로 동원할 수 있는 긴급자금을 평소보다 몇배이상 늘렸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미 발행한 회사채까지 발생사가 보유하는 「리턴」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비상시에는 정부도 옛날처럼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은행도 도와주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모든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위급시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비축해두는 이른바 「돈사재기」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채권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증권관계자는 『H사는 올들어 2천억원 이상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H사 회사채를 채권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회사채를 내다 팔지 않고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자금확보라 할 수 있다. 올들어 기업들이 부쩍 이같은 「리턴」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S그룹의 경우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2백억∼3백억원 수준의 「사이트머니」(2­3일내 현금화할 수 있는 비상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돈 사재기」의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는 것은 기업사정 세무조사 금융실명제 등 각종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금을 준비해 두자는 것. 또 설비투자와 연내 실시예정인 금리자유화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기회복으로 설비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막대한 투자재원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때 가서 갑자기 자금조달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미리 준비를 해두자는 것이다. 또 금리가 자유화된다면 시중 실세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싼 자금을 지금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나중에 비싼 금리로 자금조달을 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현재 기업들이 마땅히 자금을 쓸 곳도,쓴 곳도 없다. 그런데 자금수요는 왕성하다. 일단 돈을 미리 확보해 놓자는 자금가수요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금융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 바람에 지표상으로 시중자금이 풍부한데도 시중 실세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기업들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자금을 많이 조달했는데도 중소기업들은 『시중에 돈이 넘친다는데 돈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기현상이 몇달째 계속되고 있다.

19일 증권감독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은 올들어 6월말까지 증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모두 9조2천여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1%,3조7천여억원이 증가한 규모다. 특히 만기가 3년 이상으로 기업들이 장기설비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회사채 물량이 집중적으로 늘어났다.

기업들은 은행에서도 올들어 4월말까지 1조3천여억원을 더 빌려갔다. 이에따라 기업의 은행 대출금 규모는 4월말 현재로 모두 81조2천여억원에 달했다.

이같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자금조달을 늘리자 시중금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올들어 두차례의 공금리 인하조치로 연 11% 선까지 떨어졌던 회사채 금리는 지난 3월말을 고비로 상승세로 돌아서 19일 현재 연 13%까지 올랐다. 공금리 인하전인 지난 연초 수준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기업들이 끌어모은 그 많은 돈은 다 어디 가 있는걸까. 대부분 은행 단자사 투자신탁 증권사 등 금융기관과 사채시장에서 「제테크」용으로 떠돌고 있고 일부는 현찰이나 회사채같은 유가증권 상태로 금고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금융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매일 입출금이 가능한 기업금전신탁의 경우 6월말 현재 11조7백여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약 3조8천억원,주식을 사기위해 증권사에 맡겨 놓고 고객예탁금은 3월중순의 약 2조2천억원에서 8천억원이상(16일 현재) 증가했다.

금융계에서는 『자금시장이 크게 왜곡되고 있다. 현재처럼 자금이 「사장」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비축됐던 자금이 일시에 풀릴 경우 물가나 통화관리에 치명타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투자심리 안정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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