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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자율화를 위한 길/이인호(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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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자율화를 위한 길/이인호(한국논단)

입력
1993.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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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가지 개혁 가운데도 각종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되어온 교육부를 혁신해야 된다는 것만큼 강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도 많지 않을듯하다. 입시부정이라는 창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비리는 그것이 얼마나 깊게,넓게 뿌리를 내려왔는가를 드러내었고,그처럼 썩어있는 문교당국에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중앙집권적 통제력을 행사하도록 맡겨온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가를 깨닫게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물갈이식 인사에서부터 대학 총장들에게 전달된 대학자율화 방안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제시한 대안을 보면 개혁을 향한 의지는 있을망정 문제전반의 핵심을 뚫어보는 통찰이 없기 때문에 제시된 대안도 몇가지 지엽적 대중적 요법일 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교육의 자율화 문제를 앞에 놓고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고민은 어찌보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란을 상기시킨다. 군사정권의 그늘 아래서 너무도 오랫동안 부패하고 무책임해진 교육당국이 행정적 전횡을 하는 가운데 각급 학교들은 자활력을 가진 교육기관으로서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돈봉투를 주고 받는 것이 의례적인 현상이 되었는가 하면 대학이라고 이름붙이기 어려운 수준의 학교들이 교육부 인가를 얻어 대학이라는 간판을 달고 진학 기회와 학위를 돈을 받고 남발하는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처럼 대학 전반의 수준이 엉망인 상황에서 모든 규제를 풀고 모든 것을 학교자율에 맡길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대학 자율화안이라는 것도 풀 수 있는 것부터 차츰 풀어간다는 고육지책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현실과의 절충이 정치의 속성임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교육부가 그동안 제시해온 안은 교육이 잘못되어온 근본적 원인에 대한 철저한 진단이 없는 속에서 형식적으로만 자율화 요구에 부응하는 척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피폐해진 근본원인은 오래 지속된 군사통치 아래 나라살림의 4대 지주라할 수 있는 교육·경제·국방·치안 사이의 균형이 깨져 교육을 압살하다시피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데 있었다. 국가의 물질적 자원을 할당하는데 있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지연된 것은 경제성장 우선주의정책 초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은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권위와 위신이 땅에 떨어지도록 행정적 횡포가 심했다는 점이다. 일제시대에 선생님들의 사회적 권위가 높았던 것은 물론 광복후에도 국립 서울대학교 총장의 사회적 권위는 적어도 국무총리에 맞먹는 것이라는 것을 국민학교 학생들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 직책의 상징성으로 보아서 지식인의 총수자격인 서울대 총장의 권위가 그 정도가 되지 않고는 앞날의 주인공들을 교육시키고,삶에 관한 기본가치의 문제를 상기시켜야 하는 교육자와 지성인들이 도구적 지식인으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1970년대,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지성계와 교육계가 당한 수난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새삼 이야기 할 필요도 없다.

대학 총학장들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점점 왜소해져서 교육부의 일개 국장의 호령앞에서도 몸둘바를 몰라해야할 정도로 위축되었고,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긍지를 팔지 않고는 교육기관의 장자리를 맡는다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틈을 타서 번성한 것이 교육의 명분을 빌려 장삿속을 챙기는 족속이었으며,그런 속에서 그래도 기준을 지키고 정도를 걷고자하는 대학이나 하급학교를 상대적으로 점점 더 손해를 보고 교육자들의 위신은 더욱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졌던 것이다. 전교조가 결성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깊이 따져보면 교육의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이 정치적 계산이나 사익적 고려라는 옷에 교육이라는 몸을 두드려 맞추는 일 처리방식이 체질화된 교육부와 그 눈치만을 살피는 기관장들 앞에서 양심있는 교육자들이 설 자리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육부가 교육기관들의 자율화를 통해 교육 본연의 기능을 살리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한다면 지금 바로 교육부가 직접 해야 할 일과 맡겨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우선 국립대학교들을 단순히 국립이 아니라 국영대학으로 만들어 자율적 기능을 저해해온 법과 관행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현행 제도안에서 국립대학의 총장들은 대학운영에 관한 실질적인 재정권도 사무직원 인사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국립대학들의 경영체계를 한 가정에 비한다면 멀리있는 시아버지(정부)가 혼자된 며느리와 손자들(교수·학생)을 잘 먹여 살리자고 자기 마음대로 파출부를 선정하여 그에게 생활비를 맡기는 식이다. 사무직원들이 총장이나 교수보다 교육부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되는 것은 개인들의 의도나 견식보다도 행정구조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행정 직원들은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일을 뒷받침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긍지를 느끼기보다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로 여기고 있다. 적어도 지방 군수자리쯤을 바라볼 높은 급수의 공무원을 관심도 없는 도서관 과장쯤으로 몰아넣게 되는 현행 국립대학의 구조적 폐해이다.

교육이 가지는 엄청난 잠재력이 무능하고 부패된 교육행정의 중앙집권적 횡포 때문에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었음은 비단 국립대학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교육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그러나 우선 국립대학교에 관계된 법을 고쳐 총장의 책임아래 운영되는 대학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율을 통해 교육정상화를 기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헛말이 아님을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가장 잘 증명해 보이는 길이 될 것이다.<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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