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회 임시국회에는 이상하게도 꼴불견이 많다. 대정부 질문 첫날부터 여당 총무가 국회의장에게 삿대질을 하고 의원간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더니 상임위에서도 연일 「사고」가 터지고 있다.오랜만에 활성화된 국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내각의 소극성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인 것까지는 좋았으나 꼴불견 무대에도 여야가 동반 출연해 빈축을 사고 있다.
8일 하오 법사위 회의실. 법원 행정처장을 포함,대법원 간부들을 출석시켜 여야 의원들이 사법부 독립의 방향을 날카롭게 추궁하는 자리였다. 대법원장 사퇴요구를 비롯해 추상같은 의원들의 질문공세가 수위를 높여가던 무렵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검사출신의 정기호의원(민주)이 술이 덜 깬듯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했다. 다른 의원의 발언순서를 가로채 「신상발언」으로 말문을 연 정 의원의 질문이 1∼2분간 계속되자 회의장에서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술 취했나봐』 국회 관계자들은 88년 첫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법사위 폭탄주사건」의 기억이 떠오르는듯 긴장하는 눈치였다. 정 의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옆자리의 의원이 마이크를 정 의원의 입에서 슬쩍 떼어놓았다. 질문내용이 횡설수설로 일관했음은 물론이다. 5분여 발언을 마친 정 의원은 벌떡 일어나 퇴장해 버렸다.
『어제밤 이모의원과 폭음했다는군』 의원보좌관의 수군거림속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이에 필적할만한 사건은 하루전인 7일 노동위에서 있었다. 명색이 학자출신인 박근호의원(민자)은 현대사태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날 회의에서 무식을 폭로하는 중대 실언을 했다. 현대사태 진상조사 소위의 구성을 요구하는 민주당 주장을 반박하던 박 의원은 『노동부가 제3자개입이니 필요없다고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역시 야당은 물론 방청석에서도 쓴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논리가 궁색하기로서니 국회 진상소위를 제3자개입이라고 하다니…』 한 노동부 관리의 탄식이 들렸다.
개혁바람에 움츠러들었던 국회가 활성화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꼴불견의 구태마저 되살아나서는 곤란하다. 의원들은 좀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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