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 불법판결후 법복벗은 이영복변호사/“고위층 주문에 유죄판결했었다”/법관인사·직급제도부터 고쳐야소장판사들의 사법부 개혁촉구에 대해 법원 수뇌부는 김덕주 대법원장 취임이래 외부압력이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재판에 개입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서울지법 남부지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개업한 이영복변호사(48)는 분명 다른 생각이다. 90년 11월1일 남부지원 민사합의 4부 재판장이던 이 부장판사는 또박또박 판결문을 읽었다.
『80년 보안사에 의해 언론통폐합이 주도될 당시 강박상태에서 주식포기 각서를 쓴 것은 중대한 위법행위이므로 지방MBC 주식은 원소유자에게 반환돼야 한다』
신군부세력에 의해 자행됐던 언론통폐합이 불법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이후 통폐합조치로 피해를 당한 언론사들의 손해배상·원상회복 청구소송이 잇달아 제기됐다. 5공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던 6공 고위층들이 곤혹스러웠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16개월뒤인 92년 2월 법관인사서 이 부장판사는 서울지법 북부지원으로 발령났고 곧 바로 사표를 냈다.
지원부장을 거쳐 본원부장으로 옮기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법조계에선 언론통폐합의 불법성을 판결로서 말했다가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라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법조인 특유의 조심스런 표현으로 당시 인사에 대해 『같은 사안을 놓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판결한 판사들이 승진가도를 달린 사실과 비교해보라』고만 말한다.
당시 재판의 쟁점은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의 소멸시효기간,즉 제척기간인 3년의 기산점을 언론통폐합의 경우 언제로 잡아야 하는가의 문제.
『통폐합을 당한 80년을 기산점으로 잡아 이미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게 정부나 사법부 고위층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이 변호사는 술회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강압적 분위기 등 강박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민법상 가해자의 실체를 인지,자유로운 상황에서 소송제기가 가능해진 88년 12월 국회 언론청문회 개최시기를 기산점으로 보아야 한다는게 나와 배석판사들이 도달한 결론』이라고 밝혔다.
사표를 낸 것보다도 『정치에 뜻을 두고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판결을 한다』는 등의 입방아가 더 괴로웠다고 이 변호사는 털어놓았다.
『단독판사 근무때 시국사범 재판에서 법원 고위층의 「주문」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깊은 고뇌에 빠진 적도 있다』며 이 변호사는 소장판사들의 사법부 개혁요구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또 『법관의 단체행동이 결코 바람직스럽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하지만 신중한 자세가 몸에 밴 판사들이 고뇌와 고민끝에 내린 단안인 만큼 사법부 소뇌진은 이들의 건전한 건의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염려해 소신대로 판결하지 못하는 일만은 없어지도록 법관인사와 직급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황상진기자>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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