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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참회록(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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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참회록(장명수칼럼)

입력
199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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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 40명중 28명이 참여한 「사법부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의견」은 많은 사람들을 착잡하게 한다. 그 성명서는 과거 정치권력아래 무력했던 사법부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고 있지만,많은 사람들은 그 글에서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편린을 보고 있다.광복이후 48년,그전으로 거술러 올라가 일제하에서 36년,한국인들은 거친 세파를 헤치며 생존해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모든 직업,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용기와 양심을 끊임없이 시험받아야 했다. 일제에 맞서,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고 고초를 겪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항하기보다 침묵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타협했고,협조했다.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순탄하게 살아갔을 많은 사람들이 「반체제 운동가」가 되고,「앞잡이」가 되고,「배신자」가 됐다. 절대권력에 대한 피가 얼어붙은 공포,자기혐오,벽에 갇힌듯한 절망감을 공유하면서 한국인들은 지난 한세기 고비고비를 넘어왔다.

그러므로 젊은 판사들의 성명서는 한국인 그 누구에게도 놀랍거나 낯설지는 않다. 그 성명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 시절 우리는 판결로서 말해야 했을 때 침묵하기도 하였고,판결로서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으며,판결이라는 방패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하였다… 사법부의 존재기반은 「법률」의 모습을 한 제도적 폭력으로부터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존재기반을 외면하기도 하였다… 사법부는 더이상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지 않고,불의를 응징하지도 않으며,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혀주지도 않는다는 국민의 냉소에 찬 불신은 결국 우리 판사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속죄하면서 사법부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하게 된 안팎의 원인들을 되새겨 보는 과정을 거쳐야만 사법부의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 젊은 판사들의 「법관 참회록」은 선배 판사들의 「과거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어두웠던 시대를 법관으로 살면서 「사법부의 존재기반 자체를 외면하기도 했던 아픈 과거」를 사법부가 어떻게 반성하고 정리해나갈지 국민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젊은 판사들의 선언을 어두운 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 모두의 것으로 끌어안고 싶다. 그러나 그 선언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다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선언은 공동의 것이면서 철저하게 개인의 것이어야 하고,타인을 향해 말하기보다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관은 결국 공동선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결로 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판사들의 제안이 사법부에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지고,사법부의 개혁을 이루는 하나의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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