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6월말로 신경제 1백일을 끝내고 7월초부터 신경제 5개년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선경기활성화 후제도개혁을 내걸었던 정부는 앞으로 국내부문의 개혁→대외부문의 개혁→신경제 달성을 추진한다고 들린다. 마치 1백m 고지를 점령한후 2백,3백…,1천m 고지도 점차 탈환하겠다는 듯한 태도다. 경제운용은 경기를 먼저 활발하게 하고 제도개혁은 나중으로 그것도 국내부분 우선 해외부문 다음 식으로 미루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1백일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지않은 기간이었으나 지난날에 대한 성찰은 미래에 대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1백일동안 한국경제는 무엇을 이룩했는가? 정부는 침체된 경제를 움직이게 했다고 자부하는 반면 언론은 일제히 1백일 계획을 실패작으로 돌렸다. 실업률이 올라가고,물가도 만만치 않고,그토록 정부가 바라던 설비투자도 시원치 않다는 것이다. 나는 거시지표의 부진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1백일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돈풀고 이자율 내리고 규제를 조금 완화한다고 해서 경기활성화가 이루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1백일 계획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란한 신경제는 아직도 형식과 구호에 머물고 있다. 새정부가 추구하는 경제가 「신경제」면 어떻고,「신경제」면 어떠하며,또 「신경제」면 어떤가. 신경제의 주역들이 굳이 꺽쇠까지 씌워 「신경제」를 고집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있다.
내가 알고 싶고 또 기업가·노동자·농민이 알아야 할 것은 「신경제」라는 용어가 아니라 신경제의 내용이다. 그것도 「고통분담」과 같은 수준의 표어가 아니라,장단기적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경제운용원칙이 무엇이며 이것을 실행할 정책수순체계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들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현대 노사분규에 대한 여론재판식 역공제,경제 5단체장의 물가대책협의모임 결성,신경제 주역과 재벌총수들의 회동 등 뿐이다. 1970∼80년대에 걸쳐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구태의연한 방식들만으로 신경제가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신뢰하겠는가. 새정부는 신경제의 내용을 보다 명확히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단,무원칙한 응급조치로는 결코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겉치레의 대표적인 예가 단기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이라는 사실은 실히 유감스럽다. 지금 세계경제는 침체상태에 놓였다. 유럽의 실업률은 10%를 훨씬 상회하였고,미국경기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일본경제 또한 앞으로 상당기간 어려울 것이며,중국경제도 과열을 우려하여 긴축정책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가 활성화정책을 쓴다고 해서 금방 효과가 나타날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조업의 설비투자가 늘어나지 않자 건설경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겉치레 성장을 위해 경제체질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제6공화국의 2백만호 건설이 가져다준 부작용을 강조하던 이들이 건설경기를 부추기다니 기막힌 일이다. 그래도 6공때의 2백만호 건설은 사회 정치적으로 볼때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주생활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는 콘센서스가 어느 정도는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되는 현 시점에서의 건설경기 부추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내실을 기하기 위해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경제운용적(rule of game)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여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아직도 안지켜지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경제는 효율성이 낮다. 과거 성장이 잘될 때는 한국경제가 여러가지 의미에서의 불균형의 문제를 안고 있으나 효율성만은 높다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이 움츠러들면서 효율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경제는 아직도 자본과 노동을 듬뿍 투입하여야 성장하는 외연적 성장단계에 있다. 정부는 그 이유를 파악하여 이를 시정하는데 힘써야 한다.
효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입·퇴출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비효율적인 기업이 국민경제의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덩치만 크면 망하지 않으며 또 능력있는 사람이 새로이 기업을 세우려해도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력개발·사회간접자본 구축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단히 많다. 그러나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경제의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인 기업이 사용하도록 경제운용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허용해야 한다. 그것은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업에도 적용해야 하고,또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특히 재벌그룹의 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한국경제가 효율성을 높이고 자생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서울대 교수·경제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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