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출시점 예상보다 빨라/“재산 재공개 면피” 시선도『민주주의에는 절차와 방법에 있어서의 민주성과 적법성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말을 남기고 외유길에 올랐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외유 64일만인 30일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재산공개 파문으로 국회를 떠난 김재순 유학성 김문기 전 의원에 이어 4번째인 박 전 의장의 사퇴는 일찍이 예견됐던 일. 그러나 올 가을께 사퇴시킴으로 보았던 정치권 일반의 예상보다 3∼4개월 앞당겨 물러남으로써 「사퇴배경」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의장직을 사퇴할 때에도 본회의 신상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버티었을 정도로 할 얘기가 많다는 자세였다.
박 전 의장은 사퇴이유에 대해 전적으로 건강문제를 들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이날 의원직 사퇴서와 함께 제출한 「사퇴의 변」에서 『오랜 정치풍상끝에 얻은 만성피로증과 신경성 고혈압으로 인해 의사들로부터 일시적 병가를 얻는게 좋다는 강력한 권유를 받았다』며 『국회를 오랫동안 비워두는 것이 도리가 아니어서 사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현재 미 플로리다주 올란도시의 큰딸집에 부인 조동원씨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박 전 의장은 「만성피로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들은 『박 전 의장은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는 부인과 같이 통원치료와 함께 장기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도피성 외유로 비칠까봐 걱정해왔다』며 의원직 사퇴에 「다른 이유」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의원직 사퇴가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2차 재산공개를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사퇴이유를 이와 관련지어 유추하는 시각이 많다. 박 전 의장측은 『의원직 사퇴를 재산공개와 관련해 생각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면서 『불필요하게 구설수를 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지난 4월26일 의장직 사퇴서를 낼 때 『앞으로 법에 따른 재산공개와 실사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명예회복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박 전 의장측은 『외부로부터의 권유나 의견전달은 전혀 없었고 전적으로 본인의 판단에 의한 결정』이라고 외압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내에서 최근 『박 전 의장이 귀국해서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또 그의 사퇴가 본회의 표결절차를 피하기 위해 임시국회 개원직전에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지난봄 출국할 때 의원직 사퇴서를 회기중에 내 본회의서 신상발언을 한뒤 자신의 사퇴서가 표결에 의해 처리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바 있다.
이유야 어찌됐던 14대 국회의 최다선(8선) 의원인 박 전 의장이 본의아니게 사퇴한 것은 김영삼정부의 개혁드라이브에 의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상징해주고 있다.
지난 60년 5대 국회에 진출,민주당 구파로서 김 대통령과 함께 청조회를 결성했던 박 전 의장의 퇴진은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한편 민자당은 겉으로는 『무소속인 박 전 의장의 진퇴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다하지 못한 숙제」를 끝낸듯한 분위기이다. 민정계를 중심으로 한 「불만의 불씨」가 본회의 표결과정 등에 다시 살아날 계기가 사전에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민자당은 「대구에서의 보궐선거」라는 부담을 안게 됐다. 명주·양양에서의 패배이후 춘천 보궐선거로 진통을 거듭해온 민자당으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TK 고통전담론」으로 대표되는 대구지역의 정서로 미루어 앞으로 90일이내로 치러질 보선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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