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꼬챙이 이 원장 대사헌 이운후손/실무총괄 황영하총장 황희 21대손/「터」는 성역없는 사정폈던 맹사성동네사정의 중추로 확고히 자리를 굳힌 감사원 터와 수뇌들의 혈맥에 청백리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지금의 감사원터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청백리인 문정공 맹사성이 살았던 동네이며 이회창 감사원장은 서슬 퍼렇던 사헌부 대사헌 이운의 후손,황영하 감사원 사무총장은 맹사성과 쌍벽을 이루는 황희정승의 후손이다.
맹사성은 지금의 감사원격인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헌이던 태종시절에 임금의 부마인 조대임을 국문하며 곤장을 친 일화가 유명하다.
노비출신으로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때 큰 공을 세워 호군자리에 오른 목인해의 역모를 추궁하면서 맹사성은 「성역없는 조사」로 부마의 연루를 밝혀내기 위해 태종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대임을 끌어다 추궁했다. 격노한 태종은 맹사성을 유배 보냈지만 그의 사정의지까지 꺾지는 못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누옥이었던 맹공의 가택은 바로 지금 감사원 맞은편의 주택가 골목인 종로구 삼청동 351의 119에 있었다.
이 때문에 예전 이 감사원 동네는 맹감사현 또는 맹현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표석이 세워져 있다.
맹현에 자리잡은 감사원의 수장인 이회창 감사원장은 법조인가문의 대쪽 법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방계왕족인 전주이씨 주박공파 23대 손으로 위로 15대 손인 이운이 대사헌을 지낸 사정혈통이다.
3백여년이 지나서 선대의 정신을 잇는 사정의 총사령탑에 오른 셈이다.
청렴강직하기로 소문난 이 원장은 공관이 너무 호화롭다며 입주를 거부했고 점심을 청와대 오찬을 제외하곤 모두 구내식당에서 1천2백원짜리로 때워 직원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이 원장을 보필하며 모든 감사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황영하 사무총장(차관급)은 재상의 대명사였던 청백리 황희정승의 21대손. 감사원 직원들이 주저없이 「실세」라고 부르는 황 총장의 고향인 경기 파주군 문산읍에는 지금도 반구정 등 황 정승의 유적이 남아있다.
청백리·사정관들의 후손이 공직자의 모범을 보이며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삼청동은 산천 수청 인청의 세가지 깨끗함을 뜻하는 곳이다.
감사원 직원들은 『산수의 깨끗함은 사라졌지만 인청의 맥은 되살아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감사원의 상징인 앞마당의 암행어사 마패상에 부끄럽지 않게 이들이 끝까지 성역없는 사정을 완수하기를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장인철기자>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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