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미국이 워터 게이트사건으로 들끓을 때 의회와 언론은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리기에 사력을 다했다.정치적 후진국들의 시각으로는 이런 극성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닉슨이 국가적 대역죄를 저질렀거나 또 나라를 망칠 정도의 실정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다수 미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끌어내리기」의 핵심포인트는 닉슨이 국민을 속였다는데 있었다. 사건전 닉슨이 도청계획을 알았거나 또 개입한 것은 아니나 사건뒤 파문이 크게 번지자 이를 수습하고 은폐하는 과정에 닉슨이 적극 주도했으면서도 잡아뗐다가 자신이 장차 회고록용으로 녹음했던 테이프의 공개로 들통나고 만 것이었다.
닉슨의 거짓이 드러나자 국민들은 불같이 노발하며 등을 돌렸다. 당시 「타임」지는 창간 50여년만에 처음 실린 특별 사설에서 『대통령은 국가운영에 있어 실수할 수도,또 오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실책과 국민이 참을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고도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고 결정타를 날렸다. 나라가 아무리 썩고 병들어도 최고통치권자만은 도덕의 화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세계 제1의 강대국,제1의 민주국가로 발전시켜온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닉슨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우리의 45년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역대 최고통치권자들이 국민을 속여도 너무 속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승만대통령이 국민을 결정적으로 속인 것은 6·25 때였다. 취임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북진통일을 외친 것은 그렇다해도 아첨배들로 하여금 『명령만 내리면 해주에서 점심먹고 평양에서 저녁을 먹을 정도로 단숨에 통일하겠다』고 호언케했다가 6·25 남침을 당해서는 하루만에 이 대통령 자신은 피란하고 서울시민들에게는 『국군이 반격,북진중이니 안심하라』고 녹음방송하여 이를 믿고 잔류했던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당했는가?
박정희대통령의 최대 거짓말은 쿠데타후 『혁명과업이 완수되면 군에 복귀하겠다』는 혁명공약과는 달리 결국 정치에 참여한 것과 절대로 개헌불가를 내세웠다가 3선 개헌을 강행했고 끝내 유신체제를 선포,장기집권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전두환대통령도 국민 속이는데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 불법적인 12·12를 일으킨뒤 『정치할 뜻이 절대 없다』고 강변하다가 5·18을 일으킨뒤 군권에이어 정권까지 장악하지 않았는가. 노태우대통령이 87년 대선 승리때 최대의 공약이었던 중간평가를 당선후 야당과 협의끝에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것 역시 단순한 공약 불이행이 아닌,국민을 우롱한 예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역대 통치권자들이 국민을 이처럼 엄청나게 기만했는데도 단 한번도 사과는 커녕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6년전 정부는 북한이 88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삼국지를 능가하는 물폭탄 공격을 위해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이어 국민의 혈세와 주머니돈을 털게해 서둘러 세웠고 1단계 공사가 끝난뒤 팽개쳐 황량해진 오늘의 평화의 댐의 모습은 바로 대통령의 국민 속이기의 대표적인 산증거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예상,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거짓말로 겁을 주며 무조건 따라오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댐건설에 설계와 조사만도 수년이 걸리고 공사와 저수에 8∼10년이 걸리는데 발표 4개월만에 착공하고 요란하게 성금 캠페인을 벌인 것 등은 난센스요,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물리적인 압력이 있었다해도 전정권의 물폭탄 위협소동에 앞장선 언론도 뒤늦게나마 깊이 반성하는게 마땅하다.
아무튼 금강산댐 문제는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북한의 수공위협과 댐건설의 사실여부,전정권이 서울수몰의 가능성을 외친 배경,정치적 의도,그리고 지명경쟁과 수의계약을 통한 특정 건설업체와의 정경유착여부 등 모든 것을 파헤쳐야 한다. 조사결과 모든 경위를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하고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든 당연히 엄벌해야 한다.
그렇게해서 다시는 최고통치권자가 국민을 멋대로 속이고 우롱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국민 기만과 무책임과 배임행위는 반드시 국민적 심판을 받도록 하는 관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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