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학생처근무 서명원씨/기물파괴군인에 항의중 연행/오 교육과 감방동기24일 상오 11시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6층 교육부장관실에선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사가 열렸다.
주빈은 80년 8월 전남대 학생처 장학담당관실에 근무하다 5급이상 일반직공무원으로는 유일하게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돼 면직됐던 서명원씨(53·광주 북구 용봉동 1197의 2). 서씨는 이날 오병문장관으로부터 전남대로의 원상복직을 통지하는 발령장을 받아들고 12년 10개월만에 공직에 복귀했다.
정부가 면직기간의 봉급 1억5천1백만원을 지급하고 면직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호봉에 반영키로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전날 밤 교육부의 이기우 총무과장으로부터 『좋은 일이 있을테니 깨끗이 이발하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새벽차로 급거 상경한 서씨에게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씨는 전남대에 난입,기물을 부수는 계엄군에 항의하다 합수부에 연행됐다. 1개월간 고문 등 고초를 겪은 서씨는 「학생회비 지출을 통해 학생시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강제 의원면직됐다.
전남대교수로 재직하다 역시 합수부에 연행됐던 오병문 교육부장관과 서씨는 「상무대 감방동기」이자 해직동료이다.
68년 5급(현재 9급) 공채시험을 통해 공직에 첫발을 디딘후 줄곧 전남대에 근무했던 서씨는 면직뒤에도 전남대 근처에 복사가게를 차렸으나 밑천인 퇴직금 5백여만원만 날린채 문을 닫았다. 1남4녀를 포함한 일곱가족의 생계는 주로 부인 김병수씨(49)가 하숙을 쳐꾸렸다.
그러나 면직기간에 서씨는 광주·전남지역 재야단체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국제사면위원회 광주지회장,사회정의실현 시민운동협의회 광주·전남지역 공동의장 등 서씨는 모두 15개의 재야단체 직함을 갖고 있다. 이제 서씨는 이 직함들을 모두 버려야한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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