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혼선 질타등 분명한 자기 목소리/민정·공화계 “우리 역할 필요” 슬슬 고개김종필 민자당 대표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달초만 해도 어두운 그늘이 내비쳤던 김 대표의 얼굴이 최근들어 한결 밝아졌다.
24일 상오 김 대표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영입의원 3명의 입당 환영식에 이어 김영삼대통령과의 청와대 주례회동,고위당직자들에 대한 회동내용 설명,재해대책위원 임명장 수여후 이들과의 오찬. 표정이 밝아진 것과 때를 같이해 김 대표는 이처럼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당직자들은 『요즘 김 대표가 당무에 열심이다』고 말한다. 측근들은 『김 대표는 늘 변함없는 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최근 김 대표를 둘러싼 여러가지 상황이 달라지고 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김 대표 주변의 상황변화는 무엇보다 6·11 보선이라고 할 수 있다. 「JP이후 포석」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던 김명윤고문이 낙선함에 따라 김 대표에 가해진 무형의 압박이 사라졌다. 그 이후 연쇄적으로 나타난 정책혼선 등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실책도 상대적으로 일조를 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난 3일 김 대통령이 취임 1백일 기자회견을 할 때만해도 김 대표의 입지는 상당히 위축되는듯했다. 5·16에 대해 「쿠데타」 「역사를 후퇴시킨 큰 시작」이라는 평가가 내려지자 김 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이는 불쾌감의 표현에 다름아니었다. 더욱이 민주당이 곧바로 「JP 퇴진」을 들고 나와 김 대표의 「중대결심」 여부가 운위되던 상황까지 초래되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지금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당에 대해 뚜렷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직자들이 표현하는 「열심」이란 말은 그가 과거와 달리 일정부분의 역할공간을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 대표는 최근들어 연일 당내 특위위원 또는 시·도지부장 등과 오찬을 하며 구체적으로 당무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수시로 고위당직자들과의 회의를 소집한다. 현안에 대해서도 종래처럼 「종합정리」 차원을 넘어 종종 분명한 의견제시를 하곤 한다.
청와대 주례회동시 김 대통령에게 격의없이 각종 건의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김 대표의 이같은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당직자들과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일련의 정책혼선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당정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친뒤 정책을 발표하라는 애기였다.
그동안 정책입안과 당무를 주도해온 민주계를 겨냥한 지적으로 해석됐다.
김 대표의 질책에 대해 당사자격인 민주계와 민정·공화계의 반응은 현격하게 달랐다.
민주계 당직자들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일처리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이에 대해 대표로서 당연히 지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반면 민정·공화계는 『김 대표의 질책은 청와대의 뜻』이라고 확대 해석했다. 한 민정계 중진의원은 『김 대표의 지적이 김 대표만의 뜻이겠느냐』라고 했고 공화계의 한 의원은 『주례회동에서 김 대통령이 정책혼선에 불쾌감을 표시했다더라』고 가세했다.
어쨌든 김 대표의 이 발언이후 당내 민주계는 다소 의기소침해지고 민정·공화계는 상대적으로 활기를 띠는 것처럼 보이는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인제 노동부장관의 「무노동 부분임금」 파문과 춘천 보선 공천 및 문제지구당 조직책 인선과정의 난맥상 등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김 대표의 입지변화는 민정·공화계의 목소리 증폭과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의 활동공간이 커지면 민정·공화계도 그만큼 「살만해지는」 것이다. 김 대표에 부여된 주요역할이 바로 민정·공화계를 다독거리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김 대표의 정치적 장래와 민정·공화계의 입지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김 대표가 장기적으로 어떤 복안을 지니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김 대표는 오는 26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를 공식적으로 물려줌으로써 일단 30여년 정치생활의 정리단계에 들어간다. 한 측근은 『김 대표에게 정치적 사심은 없다』면서 『현 단계에서 김 대표의 관심은 명예퇴진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장래설계와 별개로 민정·공화계는 김 대표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역시 민주계는 아마추어』 『인적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 등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는 동시에 민주계의 경계심을 촉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민주계 의원은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도 『김 대표의 순수한 동기를 등에 업고 불공정한 경기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있을 수 없다』고 미리 경계한다.
김 대표는 현 단계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많고」 철저히 2인자로서의 당내 위치를 지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월말 김 대통령을 대신한 미국행도 시끄럽지 않도록 하라고 측근들에게 거듭 당부했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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