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의 현장을 20여년간 지켜봐왔지만 그저께(21일)의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등 3부장관 합동기자회견같은 것은 처음 봤다. 이번 합동회견의 취지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당부말씀」을 발표하고 관계장관들의 답변으로 「당부말씀」을 뒷받침하자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3부장관의 합동회견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도하 각 신문들의 제목은 『「무노동 부분임금」 혼선』 『무노동 부분임금,당과 협의결정』 등으로 나타났다. 이인제 노동부장관의 「뜨거운 발언」이 부각됐다. 「무노동 부분임금」 문제는 지금 바로 부분파업중에 있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단체협약조건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폭발성이 잠재한 쟁점이다. 노사간의 가장 민감한 문제의 하나다. 주무장관인 노동부장관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무노동 부분임금」을 노동법 개정에 반영하겠다는 노동부의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하니 신문들로서는 당연히 이것을 크게 돌출시킬 수 밖에 없다.이 부총리 등 3부장관의 합동기자회견은 결국 친노조성향으로 재계에서 믿는 이인제 「노정」노선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그의 노정방향의 핵심이 동석했던 기획원 및 상공부장관의 생각과도 다르다는 것이 시사됐다. 3부 합동기자회견은 노사의 협력과 국민의 이해를 얻겠다는 뜻을 얼마나 살렸는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오히려 정부부처간의 불협화음을 크게 부각시킨 역작용이 더 크지 않았나 한다.
이런 의미에서 3부장관 합동기자회견은 안하는 것만 못한 회견이 아니었던가 한다. 따라서 이번 회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이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역량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간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는 권한과 『경제의 기획·운영과 각 중앙행정기관의 기획에 관하여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각부를 총괄·조정한다』는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조직법이 명시한 부총리의 권한은 영역이 분명히 적시돼 있지 않다. 「총괄·조정」의 권한이 부총리 자신의 역량에 따라 상당히 증폭될 수 있는 것이다. 역대의 강성 부총리들은 이 권한을 극대화,사실상 「경제총리」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약한 부총리들은 총괄은 커녕 조정역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적어도 「보통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되려해도 총괄 및 조정역은 제대로 해줘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이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경제부처의 부처이기주의와 재계의 이기주의가 동시에 다발적으로 분출하게 되고 경제정책들이 상충,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경제정책이 구심력을 잃고 산개된다. 청와대의 경제수석이 교통정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가 모든 경제정책을 일일이 다 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은 대통령과 행정부를 연결시키는 메신저역할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 전직 부총리는 지적한바 있다. 정책총괄·조정자로서의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고 하겠다.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과연 그 자라에 걸맞는 그릇과 무게와 머리를 갖고 있는 것인가.
이번 3부장관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이 부총리는 김철수 상공 및 이인제 노동과 함께 협의를 가졌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이 노동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면 회견을 늦추는 것이 정부로 봐서는 더 유익했을지 모른다. 이 부총리 자신이 이 노동을 설득할 수 없었다면 기자회견에 앞서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을 구했어야 했다. 이 부총리는 회견 다음날 김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장관이 「소신」이 있으면 부총리는 두배의 「소신」이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리를 걸 생각도 있어야 한다. 부총리도 경제팀장으로서의 지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관료,재계를 끌고 갈 수 있다. 『장관에게 끌려다니는 부총리』 『×××급 부총리』라는 소리는 나오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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