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민자당은 요즘 개혁입법 준비작업을 서두르느라 바쁘다. 금년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할 법안이 모두 2백60여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입법작업을 전담키 위해 지난달말 구성된 경제대책특위와 사회개혁특위는 연일 소위별 활동을 하느라 쉴 틈이 없다.이같은 특별기구 이외에 공식기구에서도 가끔 정책아이디어가 튀어나와 시선을 끌고 있다.
민자당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개혁정책의 새 구상을 짜내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열성이 돋보이기도 하는 요즘이다. 개혁은 청와대나 행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자당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민자당에서 나오는 정책대안들중에는 설익은 졸속 작품들이 더러 있어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위간부가 개인적 의견을 발설했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정회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가 청와대에 의해 백지화되거나 관계부처의 반발을 사는 경우를 우리는 최근 여러건 목격했다. 대도시 교통난 해소를 위해 공무원 출퇴근시 자가용승용차 이용을 금지시키겠다,전쟁기념관 건물에 중앙박물관을 이전시켜 민족기념관으로 한다,영화관에서 상영해온 「대한뉴스」를 없애겠다는 등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상근 예비군제도와 결혼식 청첩장 발송금지 등도 혼선을 빚은 정책대안들이다.
이러한 개혁정책 입안의 혼란을 보면서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방안이 실현성있는 국가정책이 될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다. 김종필대표도 이러한 혼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각종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여과되지도 않고 확정되지 않은 것을 당안으로 발표함으로써 혼선을 빚지 않도록 하라』고 정책팀에 주의를 주었다.
개혁의지에 불타는 나머지 너무 성급하게 단시간에 많은 것을 내놓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는 것 같다. 또 행정부와 협의해 보았자 부처이기주의에 걸려 불발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독자발표로 선수를 치는 경우도 엿보인다.
그러나 모든 일은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다. 입안의 첫 단계인 소위안은 전체위원회와 당의 공식기구를 거쳐야만 당안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단계나 최종단계에서 행정부와도 협의를 거쳐야만 실천가능한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은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은채 흘러나온 정책은 즉흥적이고 졸속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집권 여당답게 무게를 지니려면 모든 입법작업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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