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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없는 날/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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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없는 날/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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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을 휴무한 기분이 참 희한하다. 반공일이라고는 하지만 남이 모두 일하는 날,그것도 명색이 신문사에 다닌다면서 이 멀쩡한 날을 놀고 나니 어쩐지 허전한 것 같기도 하다.하지만 이런 희한한 휴일은 6월들어 벌써 두번째다. 지난 4월23일 한국신문협회가 「신문기자와 판매원의 휴식을 위해」 월 2회 신문휴간을 결의한후 각 신문은 6월부터 일요일과 월요일을 골라 한달에 두번 신문을 내지 않고 있다. 휴간뿐 아니라 과열경쟁을 말자는 협회의 「권고」에 따라 전보다 면수도 줄여 발행하고 있다. 이 덕에 신문종사자들에게는 전에 없던 휴일이 생겨난 것이다.

개혁의 선봉장 김영삼대통령은 언론에 관해 그 나름의 생각을 여러번 피력한 일이 있다. 「언론은 개혁의 동반자다」 「당근과 채찍의 시대는 끝났다」 「요즘 인쇄하는 신문의 80%는 읽히지 않고 버린다는데… 신문들이 과소비중의 과소비를 하고 있다… 신문들이 일요일도 쉬지않고 과당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 변화는 누구도 역류할 수 없는 물결이다. 모든 부문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에서 최근에는 「언론 폐혜가 크다」 「언론도 누리는 권리만큼 책임도 생각하라」 등등이다. 한마디로 신문도 구각을 벗고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들은 어떻게 보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것이 대통령 한사람의 생각만은 아니라는 것을 요즈음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면 절감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신문에 대한 주문들이 왜 하필 월 2회 신문휴간으로 낙착됐는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신문이 덜 나오고 덜 보도하는 것이 신문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인지,비위 맞추기면 몰라도 이것은 주문에 대한 온당한 대처는 결코 아니다.

과당,과열로 비쳐졌을지는 몰라도 6·29이후 지금까지 신문계에 있어온 변화는 일련의 원상회복작업이었다. 5·16이후 근 36년간 신문에 내려졌던 각양의 규제와 제약에서 벗어나는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금지됐던 월요신문이 복원되고,발행면수 제한에서 벗어나 증면이 이뤄졌다. 억지 법해석으로 불가능했던 전국 동시 인쇄로 신문을 엄청나게 단축된 시간에 독자들에게 전달하게 됐다. 끝내는 1962년 6월28일 국가재건 최고회의의 「언론정책」이란 종이 한장으로 폐지됐던 조석간 발행도 부활됐다.

거대한 장정과도 같은 이 복원의 과정에서 전에는 있을 수도 없던 부작용들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과열경쟁」이라는 것이다. 신문도 상품인 한 시장원리에 따른 경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독자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진 못했다. 아파트문만 열면 공짜신문들이 수북이 쌓이고,이것은 애당초 손해쯤은 괘념치 않는 집단들이 신문발행에 참여함으로써 더욱 악화됐다.

과열이 「설익은 소문」을 기사화하는 월권,횡포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오보나 명예훼손은 경쟁보다는 기자와 편집자의 자질에 관한 사항이다. 전체적으로 신문의 질과 상관되는 문제다. 경쟁으로 말하면 더 치열한 구미의 신문들이 오보나 명예훼손 방지에 더 엄격한 것은 좋은 보기다.

우리 언론은 권력의 통제속에서 너무 오래 견뎌와야 했지만 그 통제에 안주하면서 언론 본래의 기능개발을 등한히 해온 구석도 분명 있다. 이것은 자유언론시대라는 지금 언론의 최대과제이기도 하다. 잘못된 보도로 인한 폐해는 철저한 자기 검열,기자들의 훈련으로 방지해야 하고 법절차에 의한 피해구제가 더욱 보편화되고 용이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한달에 두번 휴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기자들이 쉬어야 하고 보급소도 쉬어야 한다는 것은 신문사의 경영문제이다. 연중무휴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적절한 교대근무가 정착되어 크리스마스고 추수감사절이고 적어도 신문이 쉬는 날은 없다. 신문이 정보의 공급매체인 한 그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요,그야말로 횡포다.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보고 필요없는 사람은 안보면 되는 것이다. 어느 경우건 공급 자체를 원천봉쇄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30여년을 후퇴한듯한 이 신문 휴간제는 적절한 개선의 길이 모색돼야 하며 지금같이 백일이 백년같은 격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90%가 성원하는 개혁에서 언론이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언론의 「개혁동반」은 찬미일변도가 아닌,그 본래의 기능인 감시와 비판의 시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주말 「개혁시대의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란 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미국 남일리노이대 김상기교수는 이점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신문이 개혁드라이브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힘을 잃게 되어 개혁이 장애와 저항에 부딪칠 때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정부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언론의 힘을 되도록 동원하지 않아야 하고 언론은 정부에 대해 절제된 협조와 비판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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