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엊그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온 포철에 대한 수사를 끝냈다. 그런데 발표된 수사결과는 국세청의 고발내용을 단순 확인만 한 셈일뿐 아니라 수사의 형평문제도 제기되고 있어 여러가지로 실망스럽다.포철은 지난 4반세기동안 정경유착의 대명사이자 세무조사의 성역으로 군림해왔던 거대기업이었다. 또 박태준 전 회장은 포철의 「군주」이자 6공 여당의 정치실세로 위세를 떨쳐왔고 3당 합당후 김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구 시대적 거물이었기에 이번 검찰 수사는 고도의 시대적 상징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런데 수사결과는 이같은 국민적 기대와 시대적 요청을 모두 저버린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외형상으로도 포철 스캔들의 주역이자 「표적」인 박씨는 일찌감치 일본으로 피신했고,그대신 별 볼일 없는 「과객」 4명만이 구속됨으로써 사건을 텅빈 잔치집처럼 마무리한 꼴이 되었다. 검찰에 구속된 「과객」 4명의 형색과 혐의내용은 박씨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박씨에게 뇌물을 강요당하거나 사업상 바칠 수 밖에 없었던 업자 20여명중에서 골라낸 2명에다 푼돈을 챙긴 황경로·유상부씨 등 박씨의 옛 수하 2명을 보태 옹색하게 구색을 맞춘 인상인 것이다. 누구도 공평한 수사처리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앞서의 국세청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의 내용도 알맹이를 피해갔기에 역시 텅빈 잔치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 알맹이는 당연히 정경유착을 파헤칠 열쇠라할 비자금 조성인데,국세청과 검찰이 모두 이 문제를 외면했던 것이다. 국세청은 상부의 지시로 그만뒀다는 소문이고,검찰은 또 국세청에서 박씨 개인 뇌물수수 관련자료만 넘겨 받았을 뿐이라는 변명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새시대의 사정의 사령탑으로써 자성속의 거듭남과 성역없는 사정의지를 불과 며칠전에 천명했던 검찰의 약속은 찾을 길이 없어졌다 하겠다.
결국 이번 포철수사도 「한정수사」 「변죽수사」 「면죄부수사」 소리와 함께 「표적수사」 소리를 아울러 듣게 되었다. 6공 당시 박씨가 여당 관리를 떠맡으면서 뿌렸던 엄청난 비자금과 정치자금 조성의 검은 내막은 또다시 묻혀졌을뿐 아니라 오히려 면죄부까지 받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다만 박씨의 엄청난 개인적 치부과정이라도 일부 밝혀낸 것을 성과라고 내세운다면 그것을 부인할 수만은 없겠다. 하지만 이 정도를 캐내자고 그토록 오랜기간 세무조사와 검찰수사를 했었다면 결국 박씨만 겨눈 「표적수사」라는 소리도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시대적 상징성과 더불어 국민적 기대를 받아온 포철 사건수사는 현실의 벽앞에서 용두사미로 끝난 감이 없지 않다. 새 시대를 모두가 함께 열어 총체적 비리를 성역없이 척결하고 새로운 활력을 모아나가려는 시점에서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기게 된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런 허술함이나 적당주의가 다시는 없어야함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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