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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순경 부검 해석 엇갈려/법정서도 논란 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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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순경 부검 해석 엇갈려/법정서도 논란 일듯

입력
199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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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례 외부충격외 경미한 출혈뿐”/국과수/“외부상흔 7군데… 집단구타 가능성”/민간학자김춘도순경의 사인과 사고당시 정황을 밝히기 위한 부검결과 해석에 갈수록 의문이 쏠리고 있다.

13일의 부검을 집도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신몽 법의학과장과 15일 재검시에 참가한 법의학자들간은 물론,범인검거를 위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의 해석은 판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당초 『김 순경은 학생들이 던진 돌·벽돌 등에 왼쪽가슴을 맞아 넘어진뒤 30여명의 학생들이 발로 차고 짓밟아 사망했다』고 추정했던 경찰은 강 과장이 부검결과 소견이 추정과는 판이하게 나타나자 15일 문국진박사 등 민간법의학자 초청 공개설명회와 이들이 참가한 재검시를 잇달아 실시,국과수 집도팀의 소견을 뒤집었다.

지금까지 김 순경의 사인해석에서 한가지 일치된 결론은 직접 사인인 「좌심방 및 좌우폐문부 파열로 인한 좌우흉강내 다량의 실혈」.

강 과장은 부검직후 심장·폐파열의 원인은 「1차례의 큰 외부충격」이며 사인과 무관한 경미한 내부출혈이 있었을뿐 『집단구타 흔적은 발견치 못했다』고 강조했었다.

강 과장이 집단구타의 외부흔적을 발견치 못했다고 함으로써 경찰의 정황분석을 완전히 뒤집은 셈이 됐다.

그런데 재검시에서 민간법의학자들은 강 과장이 발견치 못했던 외부상흔으로 『구두굽자국 3군데,몸둥이자국 4군데 등 7군데를 발견했다』고 밝혀 집단구타 가능성을 인정했다.

문 박사 등은 당초 강 과장팀이 7군데 상흔을 발견치 못한 것은 『김 순경이 1차 충격으로 사망한뒤 4천㏄의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혈액침하와 함께 뒤늦게 상흔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워낙 피를 많이 흘려 조직검사를 통해서도 이 상흔의 성격이 규명 안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상흔들이 집단구타에 의한 것인지는 수사에 맡긴다고 분명한 해석을 흐려버렸다.

일부에서는 『혈액침하로 나타나는 시반은 통상 사망 1시간후에 생기기 시작,14시간에 최고조에 달하며 이후 편차가 거의 없다』며 『부검이 실시된 때는 이미 시반이 완료된 상태이므로 부검팀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영원히 안나타났을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과수의 책임자가 부검을 했는데도 경찰이 다시 여타 법의학자들을 동원해 집단구타 흔적을 찾아낸 것은 당초 수사방향과 부검결과를 합치시키기 위한 자의적 꿰맞추기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수사결과 집단구타 가담자들을 찾아낸다하더라도 법정에서는 국과수의 부검 소견이 공식의견으로 채택되기 때문에 사안 공방은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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