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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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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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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6월8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우리의 천재소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의 독주회에 결석했던 사람은 불행하다. 반드시 음악애호가라야 할 것 없다. 강림과도 같은 한 신동과의 만남은 성사였다. 그의 휘황한 성장에 눈시울 뜨거운 갈채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거기 있었어야 옳았다.세계의 음악사는 여러 조숙아들을 기억한다. 공교롭게도 장양이 이날 연주한 곡목의 작곡가들­모차르트,생상스,파가니니,사라사테,크라이슬러가 모두 연주가로서 어릴때 대성한 음악가들이다. 6세때부터 클라비어의 연주여행을 다닌 모차르트나 2세반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생상스는 음악신동의 대명사이지만,바이올린에서도 19세기의 귀재이던 파가니니와 사라사테는 각각 8세와 10세의 나이로 공개연주회를 가졌고 크라이슬러는 10세때 빈음악원을 1등으로 졸업한 사람이다. 1980년 12월생으로 현재 12세반인 장양의 연주는 이런 역사상의 천재들을 현세에 재생시켜 주었다. 전설의 그 신기들을 시대를 넘어 실황중계로 듣는듯한 감동이었다.

만 4세때 생일 선물로 아버지가 사준 1/16짜리 새끼 바이올린을 고사리 손에 쥔 후 5세때 필라델피아 오케스타라와 연주를 하고 7세때 아스펜음악제에 참가했으며 9세때 주빈 메타의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한 장양의 음악적 급성숙은 이들 명인들의 유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도 8세때 데뷔하여 10세때 이미 화려한 기교의 성숙한 연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당대의 바이올린 거장 메뉴인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가운데 가장 경이롭고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격찬했다는 장양의 악재다.

5년전 타임지는 세계의 5대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로 한국의 정경화외에 빅토리아 물로바(러시아태생 미국거주),안네소피 무터(스위스출신 독일거주),나자 살레르노 손버그(이탈리아계 미국인),고도 미도리(일본인)을 꼽았다. 이 가운데 올해 30세의 무터는 1976년 13세때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베를린 필과 협연함으로써 신데렐라가 되었고 올해 22세인 미도리는 10세때인 1981년 주빈 메타의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바로 뉴욕 필의 신년음악회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세계적 천재소녀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70년대에 무터,80년대에 미도리라면 90년가 낳은 것이 장영주양이다.

이런 장양이 한국인임이 우리는 새삼 자랑스럽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말을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는 한국인 소녀다. 이제 한국은 세계 정상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의 명렬에 정경화와 함께 장영주양의 이름을 보태게 된다. 어느 금메달이 이보다 더 나라의 영광을 빛낼 것인가. 장양의 바이올린이 가는 곳에는 항상 우리의 국호가 기수처럼 동행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나라가 장양에게 보내는 찬미나 격려소리가 안들린다. 연주회장에 나라의 자격으로 임석한 박수 하나라도 있었던가.

음악회장을 점령하다시피 한것은 오히려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들이었다. 이 조그만 손바닥들이 나라를 대신했다. 나라는 그렇게 어리기만 했다. 그러나 음악의 대가가 되고싶은 어린이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장양의 모국이다. 장양는 바로 이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키워주기 위해 왔다. 나라의 어떤 교육의 힘이 이보다 위력이 있을 것인가.

장양은 자력으로 컸다. 그의 음악은 태교였다. 양친이 음악가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장민수씨의 말로는 장양은 두어살때부터 절대음감이 있었고 바이올린을 꼭 시키려고 한것이 아닌데 본인이 너무 좋아했다. 연습을 강요한 적이 없다. 스스로 크다시피 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 천재가 반드시 다 대성하는 것은 아니다. 좌절시키지 않자면 지금까지 독력이었더라도 이제부터는 나라가 반주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전국민이 보호자라야 한다.

일본의 미도리는 어린 대가가 되는 과정에 장양과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줄리어드음악원의 도러시 딜레이교수의 수제자라는것,아스펜음악제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주빈 메타에 발굴되어 뉴욕 필의 신념음악회에서 등장한 것 등이 같다. 어느 것이나 장양쪽이 더 나이 어려서였다. 그러나 장양과 미도리는 차이점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관심과 국민의 응원이 다르다.

경제대국으로서 세계 음악계에 당당히 내세울 정상의 독주자가 없는것이 일본의 오랜 콤플렉스였다. 마침 미도리가 나타나자 거국적으로 키웠다. 3백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사준 것은 소니 회사였다. 외국에서의 공연은 대사관원이 매표원이고 디스크의 제작이나 판촉은 정부가 알선했다. 바이올린 교습의 대모이자 미도리의 스승인 도러시 딜레이 교수만 해도 한국에는 91년 장영주양을 데리고 단 한번 왔을 뿐인데 일본에서는 일곱차례나 초청했다.

장영주양은 3년전 9세때의 모국공연에서는 1/4짜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7/8짜리로 커졌다. 많은 보험금을 걸고 빌려온 것이다. 내년쯤에는 이제 성인용 풀 사이즈의 악기로 음악을 완성해야 한다. 값이 엄청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개인능력으로는 엄두를 못낸다. 명기없이 명기없다. 무터의 바이올린은 독일정부가 사준 것이었다. 키작은 대 한국인 장영주양의 악기는 누가 선물할 것인가.<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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